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세상일까. 여러 가지 주장이 가능하겠지만 사회 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고 또 그것이 보장된 사회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의 평등이 자주 이야기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때가 많다.

고전 소설 <홍길동전>을 보면 명문가 출신에게만 출세 길이 보장될 뿐 아니라 적서차별제도에 의해 첩의 자식에게는 아예 벼슬길이 막힌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결국 인재등용에 있어 그 능력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인재등용과 관련한 차별과 그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발견된다. 한 예로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시 나타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들 수 있다.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업무 성격과는 무관하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능력과 무관하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능력과 무관하게 장애인 선발을 꺼려하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바로 인간 사회다.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생각을 하면 우리 사회는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장애인 역시 사회 성원이란 측면에서 기회는 공정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학의 입학정원 할당제는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서는 입학생을 뽑을 때 소수 인종을 배려해 그들에게 일정한 수를 배분하고 있다. 그러한 제도의 이면에는 기계적 평등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약자에게 사실상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장애인의 취업과 관련해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고용주에게 사원 선발권을 주고 장애인에게 취업 응시권을 주는 것만으로는 장애인의 취업 기회는 보장되지 않는다. 장애인을 꺼려하는 사회 풍토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 없는 취업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일정 수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게 하는 고용 할당제와 그것을 의무화하는 고용 의무제가 보다 철저하게 이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법적 보완과 사회적 캠페인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차별과 기회의 불평등은 그 사회 구성원의 기회를 빼앗고 그것은 곧 사회 전체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작은 관심을 갖고 주위를 돌아보면 장애인과 같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다.
굳이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진 자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면 우리 사회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 따뜻하고 사람냄새가 풍기는 살맛나는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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