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길 건너 복자씨네 난전이 왁자지껄하다. 우렁우렁한 복자씨의 목소리에 자지러진 웃음소리 간간이 추임새처럼 끼어든다. 왜 아니겠는가. ‘기운 없어 죽겠다’는 동네 시니어님들의 웃음소리 한 번 요란하다. 창문을 열고 빠끔히 내다본다. 뙤약볕에 후끈하게 달아올랐던 길거리에 시원한 그늘이 내려와 있다. 한 낮의 열기를 피해 은둔하던 동네 시니어님들이 배롱나무 밑에 총출동해 있다. 이런 맑고 화창한 날은 시니어님들의 관절도 별 말썽 없이 도와주었을 터. 지팡이에 의지했거나 꼬부라진 허리를 자주 펴가며 나선 걸음들이리라.
동네 주민센터 붉은 베롱나무 그늘이 절반쯤 내려오는 시각. 복자씨네 난전이 열린다. 주민들과의 소통을 외치며 담을 헐고 심은 배롱나무 밑이다. 주민센터에 볼일 차 온 사람들이 자전거를 대거나 타이어에 바람을 넣도록 해 놓은 곁이라 들락거림은 많다. 그러나 의자가 여럿 배치되어 있어 마실 나온 시니어님들의 휴식공간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음악이 있고 그늘도 있으니 명당이다. 그곳에서 복자씨와 동네 시니어님들이 마치 인생 수업 하듯 때론 진지하게 혀를 끌끌 차거나, 때론 팝콘 터지듯 통통 튀어 들썩거린다. 다리와 허리를 쭉 펴고 앉아 부드럽고 유쾌한 복자씨가 늘어놓는 우스갯소리와 하루치 장사얘기에 더위를 잊는다.
이곳은 복자씨가 하루 중 마지막에 들리는 곳이다. 새벽 일찍 경매 받은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종일 행상을 하다 귀가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고희를 넘긴 복자씨의 불편한 두 다리도 한계에 다다른 걸까. 이 시간이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고단했던 하루 마침표를 찍는다. 반쯤 시든 야채와 지친 복자씨가 함께 널브러져 풀어놓는 시간이라 여유는 배가 된다.
나는 시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난전을 기웃거린다. 골목으로만 끌려 다니다 그늘 밑에 나와 앉은 풋것들이 빨간 플라스틱 위에서 기지개를 켠다. 나무위의 스피커에서 슈만의 피아노 사중주 ‘안단테 칸타빌레’가 시니어님들의 웃음소리에 밀려 한숨 토하듯 바닥으로 털썩 내려앉는다. 쒸엑쒝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 넣는 소리와 무섭게 울어대다 이내 사라질 매미소리의 화음도 절묘하다.
도로변에 벌줌 하게 걸쳐 세워놓은 리어카에 기대 복자씨가 커다란 참외하나 우지끈 베어 문다. 반쯤 감긴 눈으로 갈증 한 모금 잘 섞어 시원하게 넘긴다. 연신 부채질하는 시니어님들의 손에도 오늘 떨이한다는 참외가 입안으로 출격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가 긴 세월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연령들이다. 한없이 투명하지만 불필요한 겉치레는 벗어버린 여유로움이다. 의미 없는 삶의 짐들은 내려놓고 노년의 의연함만이 깃든 모습들이다.
물 빠진 청색 몸빼 위에 낡은 전대를 차고 졸던 복자씨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는다. “밥 먹었능교.” 늘 시장기 밴 목소리로 누구에게나 밥 먹었는지부터 묻는다. 복자씨만의 은유적인 의미의 인사법이다. 상한 과일을 도려내고 남은 조각을 입에 달고 사는 그녀의 채워지지 않아 보이는 저 허기진 모습. 어쩌면 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궁금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비록 작은 난전이지만 그녀만의 상도덕도 있다. 명확한 셈을 하고 경위도 바르다 싶게 올곧다. 배추한단 가격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가격을 차등해 판다. 그런가 하면 과하다 싶게 덤을 요구하는 이에게는 유독 매몰차다 싶게 냉정하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궁시렁 거리며 난전 인심이 아니라며 돌아서지만 단호하다. 나는 한물간 채소와 과일을 깨작대며 뒤적이다 일어선다. 신선함이 사라진 것들에 이미 흥미를 잃은 터였다. 열기에 녹초가 되어버린 풋것들의 신음소리를 뒤로 하고 다시 시장으로 향한다.
두 손 가득 채소를 사들고 오던 나를 세운 건 복자씨의 리어커였다. 어둑한 골목 한쪽에 텅 빈 채 세워져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리지 않는 야채박스가 몇개 실려 있지 않았던가. 그새 다 팔지는 않았을 터. 쉬어갈 요량으로 기웃거리다 골목 안 무료급식소에서 나오는 복자씨와 마주쳤다. 상황판단이 안 돼 뜨악하니 쳐다보다 무심히 지나쳐 가는 복자씨의 전대에서 나는 동전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복자씨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곳을 들락거리며 박스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때로는 우리를 위로하는 것이 소소한 것일 때가 많다. 누군가 주는 밥 한 그릇이 허기만이 아니라 외로움까지 달래줄때가 있다. 가슴이 설레고 벅차올라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추억이 되기도 하고, 뭉클하여 위로와 삶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받는 사랑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힘의 원천이 되고, 누군가의 환대를 받은 사람은 스스로도 때가 되면 누군가를 맞아 환대를 베풀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 누군가에게 허기와 외로움, 내면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이른다. 그럴 때 그 밥 한 그릇은 소소한 밥이 아니다. 삶의 삭막함과 비정함을 걷어낼 만큼 고귀한 성찬이다.
어렵게 자라 얻어먹은 밥만큼 베풀고 산다는 복자씨. 풋풋하고 자랑스럽다. 정녕 배고팠던 자만이 아는 고수의 삶이다. 갈퀴 같은 그녀의 손이 낡은 전대의 지퍼를 열 때 마다 따라 나오던 따뜻한 온기. 그 정체는 배고픈 이들을 보담는 한 여인의 따뜻한 밥 한 그릇, 따뜻한 기억의 낮은 시선에서 출발했음을. 길 위에 앉은 작고 초라하다 싶은 행상 여인의 삶. 그 철학 앞에 날이 섰던 마음이 뭉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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