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미 소리마당 국정국악원장

꼭 30년이 되었다.
시어머님께서 명절날이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기름 병을 챙겨 주시는 것이 어느새 30년째이다. 가슴이 저며 오는 듯하다. 시어머님께서 지금 내 나이였을 때 나는 어린 새내기 신부였고 시어머님은 일 잘하시고 튼튼한 여장부이셨다. 이제 내가 시어머님이 그랬던 것처럼 어린 새내기 며느리를 맞이할 때가 되었다.

어찌 이리도 바삐 시간이 날아가 버렸는지, 태어나서 산 세월 중 26년은 친정에서, 결혼 후 30년은 시댁에서 살았다. 양가 부모님 정성 덕으로 별 탈 없이 여태 살았고 다행히 아직 양가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들께서 아직도 그 자리에 굳건히 계시고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양가에서 이것저것 트렁크 가득 음식을 실어 주셨다.

그중에서도 변함없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챙겨주시는 것이 시어머님께서 차등해서 주시는 참기름 병이다. 맏아들인 우리는 대병 하나, 네 분의 시누님들은 사이다병 하나씩, 이번 명절날에는 결혼한 조카들까지 다 챙기셨다. 한 시간 동안 이름과 손가락을 꼽으며 참기름 병을 헤아리시며 누구네 것이 빠졌다고 다시 부어서 한 병을 더 만드시고 하는 통에 온 집안에 참기름 냄새로 가득했다.

막내시누이가 참다못해 “엄마 애들 꺼 까지 안 챙기도 되는데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데, 하나 하나 이름 다 부르는 거 보니 치매는 아니네.” 하고 버럭 화를 내어도 연신 “이번이 마지막이데이 마지막이데이….” 하셨다. 마지막으로 내 손에 큰 대병 하나를 쥐어 주시며 “야야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데이” 하시는데 눈앞이 흐려져 어머님을 바로 볼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30년째 가장 큰 참기름 병을 들고 오는 맏며느리이다.
시어머님의 가장 큰 참기름 병이 큰 사랑의 꼬신 내를 풍기며 나의 며느리가 될 어린 신부에게도 전해지길 소원한다. ‘우리 예쁜 아가야, 나는 30년 결혼생활 동안 시어머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왔단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30년째 포항과 창녕을 수 없이 오고가면서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시댁일로 남편과 다툼 한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머님의 아낌없는 사랑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된단다. 나의 시어머님께 배운 대로 그런 사랑으로 너와 함께 할 시간을 상상 한단다.’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시누들과 조카들의 아기들까지 사실 몇 명인지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온 집안에 어른과 아이들 소리가 넘쳐 났다. 거기에 내가 제일 잘 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우리집 명절 대표음식인 등갈비로 더욱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돌아오면서 나도 우리 시어머님 같이 후덕한 시어머니가 되어야지 다짐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역시 가족은 모여야 힘이 나고, 좋은 전통은 전통으로 이어져 온고지신의 뜻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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