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봐라. 간다.” 다섯 살 사내아이가 단단히 토라진 얼굴로 소리치고 있다. 한 쪽 발로 현관문을 괴고 서서 가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중이다. 조용하다. 포기할 아이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수없이 접해 꾀가 말짱해진 아이는 침착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봐라. 봐라. 나간다고” 두 손을 허리춤에 걸쳐 짚고 짐짓 화난 목소리로 톤을 높인다. 그러나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는 미동조차 없다. 이쯤해서 굴할 아이가 아니다. 어디 한두 번 해 본 솜씨던가. 이번에는 현관문을 발로 차며 숨넘어갈 듯 당장 나가겠다고 한다. 그리곤 곧 벌어질 상황을 익히 알고 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입맛까지 다신다. 곧 엄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맨발로 달려 나와 자신을 달랠 것이다. 그런 뒤, 평소 뱁새 눈물만큼 주던 아이스크림이나 맛 나는 과자를 마음껏 먹게 해 줄 것이다. 더 나아가 이번엔 눈여겨 봐둔 장난감까지 엄마에게 요구할 참이었다. 그러나 조용하다. 이 각본에도 없는 황망한 상황에 현관문을 괴던 아이의 다리에 힘이 빠진다. 순간 ‘철거덕’ 하고 현관문이 잠겨 버렸다. 이럴 수가. 잔머리를 굴려 관심을 받아보려던 아이는 그만 강제로 가출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이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진 온통 제 세상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제멋대로였다. 걸핏하면 떼를 쓰고 응석받이가 되어갔다. 얼마 후, 동생이 태어났다. 상황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이제는 내 것이 전부 내 것이 아니라는 상황에 아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심술만 늘어났다. 동생 탓이라 여겨 화풀이를 해댔다. 그러나 그럴수록 돌아오는 건 야단뿐이었다. 동생에게로 옮겨 간 부모님의 관심에 점점 목이 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로 돌려놓을 극약처방이 필요했다. 가출을 외칠 때마다 쏟아지는 부보님의 관심은 그나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갈증 난 관심의 결핍을 채워줄 그 처방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오소소 한기가 든다. 잘근잘근 바스라질 듯 뼈마디도 쑤신다. 종일 두통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몸에 살(煞)이라도 끼었는지, 모질고 독한 기운이 내 심신을 쥐락펴락 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한순간 멈춘다. 집안의 대소사로 고갈된 에너지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몸은 정직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적절한 휴식이 유지될 때 정상적인 컨디션이 유지된다. 그러나 주위를 청결하게 해 주지 못했을 때, 나를 오해하고 돌보지 않을 때, 스스로 상처를 내 돌봐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배터리가 방전되듯, 몸 여기저기서 휴식이 필요하다는 sos를 보낸다. 늘 하던 습관이나 관성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의 자가 반성 행위인 셈이다.

몸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린다. 힘들었다고, 죽을 만큼 힘이 들었다고. 내색하지 못하는 마음을 대신해 몸이 울부짖는다.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을 따라 말같이 달리며 무거운 삶을 지탱해 낸 몸. 좀처럼 불평할 줄 모르는 이 미련하고 충직한 하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그러나 집안 대소사 앞에 대가족의 맏며느리에 휴식이란 엄감생신 사치일 뿐이다.

몸살 뒤끝이 심상치가 않다. 미열이 남아있는 몸을 겨우 추스르고 일어나니 이번엔 멀쩡하던 이빨이 욱신거린다. 들뜬 잇몸 여기저기서 균열이 일어나 들썩거린다. 비로써 입안의 반란에 화들짝 놀란다. 그동안 무시하고 외면했던 휴식의 결핍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다.

겨우내 치과 치료를 받았다. 뽑고, 심고, 신경을 죽이고 뒤집어씌우는 대공사를 했다. 부실해진 잇몸에 간당간당 견디던 뿌리들이 통제 흔들렸다. 우수수 쓰러지는 이빨에 연민의 눈길로 사죄하지만 너무 늦은 뒤다.

부옇게 뜬 입 안 오염물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조차 씁쓰레하다. 진즉에 휴식을 호소하는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었다. 꽃은 자신이 꽃인 줄도 모르고, 청춘은 자신이 청춘인 줄도 모르고, 지거나 부서지거나 늙고 나서야 호시절을 떠올리듯. 두려워서, 바빠서 무시해 일을 키운 지난날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던가.

풍요와 빈곤이 공존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게 풍족해 보이는 우리의 삶도 들여다보면 가슴은 그 어떤 결핍으로 헛헛하다. 어딘가에는 택배와 음식이 넘쳐나지만 어딘가에는 풍요에서 비켜 빈손을 근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뼈 빠지게 일해도 누수만 생겨 생존문제를 틀어막는 일만으로도 버거운 가난과 외로움. 친밀한 관계에 굶주리고 애정과 사랑, 지식과 일에 목이 마른다. 인정(人情)과 사랑을 받지 못해 분노하고, 인정과 사랑을 잃을지 몰라 두려워 과로 한다. 그럴수록 빈속 같은 감정의 결핍에서 오는 허기에 몸과 마음은 더욱 지쳐간다. 이럴 때, 문득 쳐다본 하늘 끝에 걸린 새털구름 한 점. 느슨한 연대의 지인이나 두터운 사이의 친구 근황을 묻고 들어주는 짧은 한 통화. 그 짧은 여유들을 모아 우리 마음의 결핍을 채워간다면 결코 결핍의 끝을 두려워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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