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미 소리마당 국정국악원장

국악이라는 한 방향만 보느라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고향 친구라는 단어가 생각나질 않았다. 간간히 고향 친구들끼리 해외여행을 간다고 준비하면서 오고가는 휴대전화 문자 내용도 나는 그냥 글자에 불과했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에 많이 서투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도 없는 것이 많다. 국악원 작은방에 옷장도 화장대도 없고 그냥 옷을 두면 그곳이 옷장이고 화장품을 놓으면 화장대이고 불편한 것도 없고 필요한 것도 없다.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고 그냥 사는데…. 친구들 또한 잊은 적은 없지만 나의 일상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며칠 전 친구 남편이 화장실에서 넘어져 그만 황망히 돌아가시는 사건이 생겼다. 너무 놀라고 안타까워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고향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나이가 이런 일이 생기는 나이가 되었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바빠도 가서 위로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뒤로 하고 허둥지둥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갔다.

30년,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너무도 많이 변해서 남자 친구들은 알아보지도 못하는 친구도 있었고, 너무도 긴 세월이 흘러 버린 것이 실감 났다. 하지만 눈빛만은 예전 그대로였고 우리는 어느새 검정 교복 입은 중학생이 되어 한 마음이 되었다. 누구는 딸만 셋이고 누구는 며느리를 보고 누구는 아직도 대학생 자녀들이 줄줄이 있었다. 철부지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각기 자기 몫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 정말 장하고 자랑스러웠다.

내 고향 경남 창녕군 대합면 퇴산리 162번지, 앞산이 예전보다 낮아지고 나무가 많이 큰 것 말고는 크게 변한 것이 없는 우리 친정동네이다. 코 찔찔 머스마, 가시나 들이 이렇게 커서 머스마들은 머리가 대머리가 되고 가시나들은 눈가에 주름이 깊어져 외모는 조금 낯서나 행동이며 마음은 아직도 어릴 적과 같다는 것이 느껴졌다. 험한 세상 사느라 얼마나 고생했겠노….

나는 그동안 동창회에 참석도 한 적 없고 회비도 낸 적 없어서 보훈 머스마한테 욕을 한바가지 들었어도 가슴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다 왔다. 헤어지는 친구들 뒷모습에서 지금 내 모습도 보이고 어릴 적 코 찔찔 내 모습도 보였다.

문득 흥해 농요 가사가 생각이 나는데 ‘ 이렇더라 이렇더라’ 이 가사가 뜻하는 것은 세상살이 ‘별거 없더라 별거 없더라’ 70세 고령 창자의 숙성된 목소리에서 정말 인생이 별거 없다는 것이 간절히 느껴지는 가사이다. 살아보니 정말 눈앞에 보이는 인생은 별거 없는데 보이지 않는 것은 별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 돌아보면 슬픔과 눈물만 가득하지만 잠시나마 옛 고향 친구들의 모습에서 어릴 적 풋풋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는 연속극도 다정다감한 내용에 교훈적인 내용이었고, 100만원은 상상도 못할 큰 금액이었다. 청치마는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옷이었고, 소죽 끊이는 불 속에 고구마만 있어도 좋았다. 사랑방에 큰 이불 중간에 펴 놓고 다리 쑥쑥 넣어서 밤새 웃고 라면을 삶아 먹는 날은 모두들 긴장하며 그 순간을 기다렸다. 참으로 긴 세월이 단번에 날아갔다.

미자야, 어떤 말로 위로가 되겠니? 힘내서 또 살아 보자.
세상은 따스하게 보면 따스하게 다가와 주고 거칠게 보면 가칠게 다가온단다.
친구들아 그동안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고 어릴 적 순수한 그 마음 잃지 말고 열심히 살자.
친구는 고향 친구가 정말 최고라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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