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사진작가

경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현내리 두봉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도원정사(桃源精舍)는 경주이씨 기계 입향조(入鄕祖)인 조선중기 유학자 도원(桃源) 이말동(李末仝,1443~1518) 성균진사(成均進士)의 높은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1928년에 후손들이 세운 누각이다. 도원(桃源)이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줄인 말이고, 정사(精舍)란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수양을 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도원정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누각 형태의 다락집이다. 도원 이말동 진사는 소과(小科)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들어가 성균관 유생으로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러다가 1494년에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이 성종(成宗, 1469~1494)의 뒤를 이어 즉위한 후 연산군이 난정(亂政)의 기미를 보이자 1496년(연산군 2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경주부 부남(지금의 경주시 충효동)으로 낙향한 부친을 따라 두 형과 함께 낙향하였다.

이후 이말동 진사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오로지 학문과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기로 뜻을 세우고 은거지를 찾던 중 경주 북방에 산세가 좋고 물이 맑기로 유명한 경주부(慶州府) 기계현(杞溪縣) 현내(縣內, 지금의 포항시 기계면 현내리)로 입향(入鄕)하였다. 한때 기계면 현내리는 이말동 진사의 후손들이 전체 인구의 70%를 넘은 적이 있었을 정도로 큰 집성촌을 이루었다.

도원 이말동 진사의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조선 유학사에 있어 사림(士林)의 종조(宗祖)로 추앙받는 인물로서 수많은 시를 남긴 뛰어난 문인이었고, 정몽주에게서부터 내려오는 도학(道學)의 계승자였으며, 김굉필을 비롯하여 김일손, 정여창, 남효온, 남곤 등 많은 사림파(士林派) 제자를 육성하였다.

이른바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시초가 되는 인물로 나중에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훈구파와 갈등을 빚으면서 몇 차례 사화를 일으키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도원 이말동 진사의 유고(遺稿) <도원선생문집>에 기계 은거 중에 읊은 시가 전한다.

月留千古色 (월유천고색) 저 밝은 달은 천년의 옛 빛이 어리고
巖老百年藤 (암노백년등) 바위는 늙은 등 넝쿨에 엉켜 있네.
洞裏幽閑足 (동이유한족) 한가하고 그윽한 골짜기가 마음에 드니
無心艶武陵 (무심염무릉) 무심코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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