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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금요일] 수계식신숙자 수필가
   
지난해 겨울 불교 대학에서 수계식이 있었다. 이왕 불자가 되기로 한 이상 하루빨리 수계를 받을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감정의 기복이 생겼다. 수계의 의미를 알고 나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졌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을 믿고 싶은 마음 사이에 흔들리다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라 여겨져 예정대로 받기로 했다. 말씀에 따르면, "무릇, 계라고 하는 것은 악을 없애고 선을 드러내는 기본이 되며 범부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씨앗이다"라고 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 씻을 길 없었는데 연비의식을 통해서 가진 업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니 용기가 생겼다.

소신공양이라 하긴 너무 거창하고 향불로 가볍게 살갗을 태우는 연비가 시작됐다. 경내의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긴장감이 돌았다. 부처님의 가피를 빌며 두 눈을 감았다. 순간 스님이 들고 있던 향불이 생살에 닿았다. 통증에 전율을 느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마른 풀잎이 불에 타 사라지듯 따끔하던 찰나에 모든 죄업 사라진다고 하였으니 이보다 쉬운 업장 소멸이 있을까 싶었다.

하나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발갛게 데인 자리에 콩알만 한 물집이 잡힌 걸 보면서 새삼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생명을 존중하라, 아낌없이 베풀어라, 청정행을 하라, 진실을 말하라, 바른 마음을 지녀라."는 계율을 마음에 새기면서 팔뚝에 잡힌 화상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은 새로운 것을 생성하기도 하지만 가진 것을 사라지게도 한다. 불에 데면서 생긴 물집 아물고 불그스름하게 남아있던 흉터가 희미해질수록 계를 실천하려던 마음이 옅어졌다. 맹세의 낙인처럼 작지만 강했던 흔적은 허공에 새겨놓은 구름같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생활은 여전히 정화되지 않았다. 작은 일에 토라지고, 남의 상처에 외면하고, 내 것 아닌 것에 욕심부리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변한 것이라곤 부처님 코앞에서 계율을 지키겠다고 섣불리 맹세한 심리적인 부담감뿐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쉬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아낌없이 베풀라는 계율을 실천하기는커녕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람에게조차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만 보아도 마음은 조금도 정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친 정은 부족한 만 못했다. 매일 만나는 것도 모자라서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친자매라고 소개를 할 만큼 각별했던 언니와의 사이에 틈이 생겼다. 소원해진 연유에 대해선 짐작이 갔지만, 내 탓이 아니라 여겼다. 언니 또한 내 잘못이 아니라 했기에 서운해진 감정은 머지않아 봄눈처럼 녹을 것이라 믿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초하루나 보름 법회가 있는 날이면 일부러 나를 피해 구석 자리에 앉는 언니를 보았다. 빤히 보이는 자리에서도 못 본 척 딴청을 피우는 언니를 보면서 다른 암자에 다니던 사람을 괜히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몰라라 하면 그만인데 자꾸만 신경이 쓰여 곁눈질이 되었다. 무심한 듯 보고 있지만, 속까지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네댓 해 전, 수술 후 무력하게 지내는 나에게 언니는 더할 수 없는 관심을 보였다. 행여나 건강이 더 나빠질까 봐 형제 이상으로 애정의 손길을 보내왔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약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구해왔다. 가볍지 않은 마음 씀씀이가 치유에 적잖이 도움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니 모든 것이 즐거웠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갈수록 신명 나는 나와 달리, 언니의 표정은 시나브로 어두워졌다. 힘들 때 돌봐준 은공도 모르고, 문학회 동기생들과 어울려 다니는 내 모습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언니의 마음은 배신감과 소외감으로 얼룩져 갔다. 무엇 때문에 언니 마음이 굳어졌는지 알면서도 동기생들과 어울려 다니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관심이 일을 더 꼬이게 했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다니던 문학회를 한마디 말없이 탈퇴하고 말았다. 진즉 언니의 마음을 살폈더라면 잠적하듯 떠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천근이었다.

수년을 함께 한 사람이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언니의 근황을 물어왔다. 마음이 여려서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이 아닌가. 얼마간 에둘러서 감싸주었는데 좁은 절 마당에서조차 모른 척 돌아서는 언니를 보니 나도 모르게 속심이 굳어졌다. 마음의 문이 더 닫히기 전에 다가설 법도 한데 행하지 못했다.

수계식을 치르고 받은 법명이 진여화(眞如華)다. 참 진, 같을 여, 빛날 화, 음과 뜻으로 법명의 참뜻을 다 헤아리지 못해 수계증을 들고 스님께 달려갔더니 "부처님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을 밝히라" 일렀다. 가까운 사람의 심정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나에게 법명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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