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규 사회2부 부장

 

‘둔필승총(鈍筆勝聰)’이란 ‘둔한 기록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뜻으로 다산 정약용이 한 말이다. 즉 ‘둔한 사람이 붓으로 기록을 하는 것이 총명한 사람의 기억보다 낫다.’ 는 의미로 단순히 기록을 하는 것이 기억보다 나은 것 이라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천재가 아니더라도 열심히 쓰고, 읽고 공부를 하면 천재보다 나은 성과를 이룰 수 있는 희망적인 한자성어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을 시작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총 11건의 세계기록 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로써 기록과 보존의 역량이 뛰어난 문화민족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토록 기록을 중요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과거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을 통해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 역사기록물은 사라진 시간의 기억이자 공간의 텍스트(text)이기도 하다. 또 기록물은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해석의 창고이자 진실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기록물은 늘 정의의 편에 서 있으며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불의와 부정의한 자는 진실을 덮으려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기록을 잘 남기고 보존하는 것은 곧 정의로운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

상주시는 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낙동강 덕분에 옛날부터 들이 넓고 기후가 좋아서 삼백(쌀, 누에고치, 곶감)의 특산물로 이름난 곳이다. 조선시대 성종 임금이 8도의 이름을 정할 때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경상도라 하였다. 경상도 속에 상주가 든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부터 상주는 살기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낙동강의 이름 역시 ‘상주의 옛 지명이 낙양(洛陽)이고 낙양의 동쪽은 낙동, 서쪽은 낙서, 남쪽은 낙평, 북쪽은 낙원이다’ 라고 경상북도 지명 유래집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니 낙양 즉 상주지역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이름 하여 낙동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듯 낙동강을 품은 상주시는 농업의 발달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유ㆍ무형의 유산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러한 배경을 기반으로 상주시는 지역이 가진 역사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역사문화를 바로 세우기 위해 ‘상주의 역사문화유적지 정비와 관광자원화 방안’의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유적의 조사 역사문화 발굴에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상주지역의 문화재 현황은 기초적인 자료의 소개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황천모 상주시장은 얼마 전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만나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보존방안을 마련 등 한쪽에서는 역사의 고장 상주를 외치면서 한쪽에서는 가장 중요한 우리 전통 유ㆍ무형의 유산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 현실이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특히 상주 낙동강의 낙동나루는 낙단대교가 건설된 후로 유서 깊은 강나루의 경관을 지속시키지 못한 채 산업풍경 속에 그냥 함몰되어버린 아쉬움이 있다. 상주시는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좋고 문화관광명소로 개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발굴조사의 미비와 계획적 정비의 부족으로 이름뿐인 역사문화지역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상주시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읍성국가로 사벌국이 존재했고 고령가야의 터전이다. 지금이라도 낙동강을 품은 ‘낙양(洛陽)' 의 명맥을 계승하여 둔필승총(鈍筆勝聰)해 간다면 고대, 근대, 현대가 공존하는 꿈이 있고 활력이 넘치는 아름다운 문화와 역사의 땅 대한민국의 뿌리 상주로 거듭 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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