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허경태 편집국장

전국에서 일제히 치러지는 수능시험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해마다 바뀌는 대학 입시제도 때문에 초중고 학생들과 학부모가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시대적 상황을 벗어날 수 없듯이 학문 또한 그 시대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학문 역시 권력지향적임을 인정하고 객관적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천 년 전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살았던 사상가 왕충(王充)이 쓴「논형(論衡)」에 비읍불우(悲泣不遇)의 고사가 나온다. 비읍불우(悲泣不遇)]란 “제도가 여러 번 바뀌는 통에 평생 동안 출세할 기회를 얻지 못해 슬피 운다.”는 뜻이다.

옛날에 주라는 곳에 헐벗은 한 노인이 길가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길을 가던 나그네가 그에게 물었다. “노인은 왜 그렇게 슬피 울고 계시나요?” 노인이 대답했다. “내 신세가 너무나도 한심해서 그런다오.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도록 한 번도 출세할 기회를 만나지 못했으니.” 나그네는 아주 이상해서 물었다. “어떻게 한 번도 기회를 못 만났단 말입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젊었을 적에는 글을 배웠소. 공부를 마치고 과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에는 나이 든 사람이 존중을 받았지요. 젊은 사람은 아무리 학식이 있어도 무시했기 때문에 쓰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뒤 나이든 사람을 존중하던 임금이 죽고 새로 임금이 들어섰는데, 그는 무예를 숭상했소. 그래서 나는 글을 버리고 무예를 배웠지요. 무예를 익혀서 막 벼슬길로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무예를 숭상하는 임금이 죽고 젊은 임금이 들어섰지요. 그 젊은 임금은 자기처럼 젊은 사람을 중용했소. 젊었을 때는 나이든 사람을 중용했기 때문에 출세를 못하고, 학문을 익혔을 때는 무예를 숭상했기 때문에 출세를 못하고, 늙어서는 젊은이를 중용했기 때문에 출세를 못한 겁니다.”

이 우화는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중대한 교훈을 준다. 고등학생은 졸업 후 지원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시, 당장 특정 분야의 인기 있는 대학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당장 인기는 없지만 자기 주체적으로 10년 후를 내다보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세상의 틀에 나를 맞추면서 산다면 불우한 생애를 보낸 노인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시류에 잘 대처하면 나름대로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펙을 쌓고 학벌을 늘이는 시대의 조류를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는 실력을 쌓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각자만의 타고난 고유한 능력이 있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다는 말이다. 미인은 생김새가 다르나 모두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작가나 음악가도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기에 나름의 마니아들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음식이나 술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맛이나 취하는 속도가 다 다르듯이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분야를 찾아 학문하는 것이 나이가 들어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마치고 먹고 살기 위해 공직에 뛰어 들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직장을 정리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한 학문은 청소년 시절에 해보지 못했던 한풀이 공부에 다름없었다고나 할까. 농사를 짓는 것도 때가 있듯이 공부도 마찬가지다. 세상 모든 일에는 해야 할 시기가 있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 주어진다. 연습이나 나중이라는 것은 없다. 수능시험 결과가 나오고 나면 성적에 맞춰 수험생들도 각자 진로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때 비읍불우(悲泣不遇)의 고사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그동안 대입제도는 수도 없이 바뀌어 왔다. 결과적으로 어떤 권력자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입장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시대의 조류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기 삶을 자기 주체적으로 선택할 것인가. 이는 순전히 수험생들 각자의 몫이다.

모든 수험생들이 12년의 공부과정을 결산하는 대사(大事), 수능준비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에 따라 희비는 엇갈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보다는 앞날이 있지 않은가. 시험 결과 때문에 느끼는 순간의 기쁨이나 슬픔은 과감하게 잊어버리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자신을 다독이며, 자신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보기를. 그러다보면 스스로 새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