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한국U&L연구소장

최근 북한의 최고 지도자는 경제 총력전을 선언하고 경제개발구, 관광 특구의 개발에 전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엔의 대북 제제에 막혀 경제 활력의 동력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의 정책 담당자들도 국제 거래 없이 단순한 국내의 인력과 장비만으로 현대식 경제 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과 같은 위대한 수령 동지에게 감히 직언할 수 없는 비정상적 권력 구조라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은 지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하는 경제 참극을 겪은 이후 그들이 적대시하던 자본주의 요소를 띤 장마당 중심의 경제로 겨우 버티고 있다. 2016년 북한의 GDP는 3.9%까지 올랐지만, 국제제재 후 지난해에는 -3.5%였고, 올해는 더 악화돼 -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5%로 떨어지면 북한 주민의 고통은 처참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현재 4천여 개의 장마당 시장은 정부에 대한 뇌물과 자유, 통제와 묵인을 교환하면서 비교적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나, UN의 압박과 제재로 인해 주로 중국과의 밀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계점에 와있다.

북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국제경제의 협력 지원을 받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이며 그것은 비핵화 조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북한 당국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비핵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경제와 사회가 개방되면 인민들은 자신들의 처참한 삶의 질에 대해 국제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거짓으로 세뇌되었던 1인 신격화 통치체제에 충격이 올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고 있다. 백성들을 굶겨가며 어렵게 핵폭탄을 만들었는데 그 핵폭탄을 완전히 포기하려니 망설여지는 것이다. 경제성장을 원하지만 국제적 개방과 시장경제의 활성화 과정에서 정권이 위태로워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진정으로 비핵화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에 대한 대대적인 대외원조 정책, 마샬 플랜(Marshall Plan) 이상의 강력한 경제 지원을 분명히 약속하고 있다. 이른바 빅딜(big deal)을 요구하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폭탄 일부를 숨겨 둔다면 압박과 제재를 완화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하노이 노우 딜(no deal)에서 분명히 밝힌 셈이다. ‘살고 싶으면 비핵화하라’는 국제 사회의 분명한 요구이므로 참으로 우리로선 다행한 일이다. 트럼프의 하노이 회담 결렬이 미국 정치계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러므로 ‘완전히 비핵화하면 압박과 제재를 해제한다’는 빅 딜과 ‘비핵화하지 않으면 압박과 제재를 지속한다’는 노우 딜은 기본적으로 같은 성격의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핵폭탄의 일부를 숨겨 둔 것에 대해 알면서도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대북 압박과 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국제사회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북한이 아직은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결심하지 못했고, 숨겨둔 핵폭탄 시설을 공개할 의지가 없음을 알고 있지만, 꾸준한 북한 ‘달래기’를 통해 점진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스몰 딜(small deal) 전략이다.

만일,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과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핵 시설을 보유한 채 이를 동결한 대가로 미국이 징벌적 제재 해제를 약속하는 이른바 스몰 딜에 합의한다면 이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미국은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을 완전히 제거한 대신 한반도와 일본은 핵을 머리에 이고 살도록 방치하는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이 북의 핵 인질이 되도록 하는 등 결국 미국이 대한민국을 버리는 카드가 되는 것이다. 남한 정부가 이를 추진하고 있다면 이것은 헌법 제66조 위반이다.

북한은 숨겨둔 핵시설 일부를 보유한 채 기 공개되어 있는 일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일정한 부분의 제재 해제를 요구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의 최첨단 정보기관에 의해 그 은폐가 들켰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의 관심은 빅딜(big deal)과 스몰딜(small deal)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진정한 비핵화의 길을 선택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남북 긴장 관계의 해소와 평화의 정착, 비핵화 조치와 남북 경협이 뭉뚱그려 잘 이뤄지기를 소망하고 있으나, 북한의 비정상적인 반응으로 인해 현재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과 예민한 부분에서 다소 상반되는 의견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국민이 국제적 수준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 통일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끼리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 역학관계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에 대해 범국민적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정답은 간단하다. 통일을 염원하고 지지하는 힘이 통일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힘보다 더 클 때 이루어진다. 한국인들이 가장 염려하는 점은 한국 정부가 UN의 기본 정책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면 오히려 북한의 통 큰 결단을 방해할 뿐 아니라 우리도 국제적 압박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압박과 제재의 국제적 흐름에서 선(先)제재 완화를 외침으로 찬물을 끼얹거나 국제공조를 깨트리는 망신을 당할 필요가 없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잘 공조하고 있으며 엇박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 의회에서 한국의 문(Moon) 정부는 ‘달(moon)을 향해 총(gun)을 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는 사실에 자기 성찰 (self-monitoring) 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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