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차를 몰고 출장중이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에 운전하는 기분이 안난다. 그러다가 저멀리 하얀 가로수가 보여 가까이 가니 만개한 벚꽃이다.
어느덧 벚꽃시즌이다. 작년에는 지진을 수습하느라 벚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올해는 그래도 꽃을 볼 수 있는 여유는 있다.

예전에는 벚꽃을 구경하려면 경주 보문단지나 진해 군항제 같은 특수한 곳에서만 가능했는데 이제는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공원, 대학 캠퍼스, 공공기관 주차장 등을 거쳐 우리 아파트 단지까지 왔다. 겨울에는 포근하다가 꽃샘추위가 많아 계절의 흐름이 혼란스럽다가 벚꽃을 보니 봄이 왔다는 확신이 선다. 앞으로 매화가 아니라 벚꽃이 봄을 확인하는 상징이 될 듯 하다.

상대적으로 다른 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일부러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벚꽃이 압도적으로 많이 보인다. 어느덧 우리 주변을 점령하고야 말았다.
벚꽃은 꽃잎이 많다. 나뭇잎은 없고 꽃잎만 있다. 군집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서 규모도 크다. 매년 이때쯤이면 도로 경계석 구석에 떨어진 꽃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다른 꽃과는 달리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이다 보니 시각적인 효과가 큰 것이다.

그러나 벚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갑자기 피어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다. 신기하게도 만우절인 4월 1일을 전후하여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형제나무인 장미꽃과 비교하면 피어있는 기간이 짧다. 비록 붉은 꽃은 아니지만 벚꽃이야 말로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잘 어울린다.
꽃잎은 보통 비가 온 뒤에 사라진다. 봄비가 화사한 꽃잎을 푸른 나뭇잎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때 나무밑에 주차해 놓으면 차량 도색면에 떨어진 꽃잎이 붙어 얼룩덜룩해진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벚꽃을 혼자만 보려고 심는 사람이 없다. 자연스럼게 많은 사람이 꽃을 보게 된다. 특히 가로수로 벚나무가 많아 꽃이 피면 도로가 매우 화사해진다. 그냥 차를 타고 다니며 감상을 해도 된다. 그러다보니 꽃을 보러 일부러 외출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덧 공공재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현상으로 도로가 마비되는 부작용도 있다. 예전에 포항에서 경주로 운전하면서 평소 30분이면 가는 거리가 벚꽃을 보러 가는 차량에 막혀 두시간이상 고생한 기억도 있다. 대구의 경우 팔공산에 벚꽃이 피면 차들로 진입로가 마비되어 주민들이 매우 불편하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어서 아름다움과 아픔의 양면성을 상징한다. 벚꽃에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측면이 없는 듯 했는데 이런 면이 있구나.

약 20년전 일이다. 당시 대학원 다닌다며 직장을 휴직중이었다. 외출하였다가 길거리에 핀 벚꽃을 보았는데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날씨에 지금보다는 훨씬 환하게 보였다.
하지만 꽃이 너무 화려하여 오히려 화가 났다. 좋은 날씨에 좋은 경치를 두고도 즐기지 못하는데 대한 짜증일 수도 있다. 꽃을 즐기는 남들에 대한 질투일 수도 있다. 이런 기분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였을 것이다. 보기 좋은 것들로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벚꽃은 아카시아나 플라타너스 등과 함께 일본에서 넘어온 식물로 의심되고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 백제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설득력있는 학설도 있다. 제주도 왕벚나무는 제주에서 자생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과 관련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어쨌든 오래 전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꽃으로 여겨져 왔으니까. 어떤 신문에서 벚꽃이 일본에서 나왔더라도 무조건 배척하지는 말자는 칼럼도 보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벚꽃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버렸다. 일본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참으로 복잡한 세상만사를 경험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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