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한국U&L연구소장

대학 수학능력시험 문제가 한국의 모든 학교 시험 문항의 기준이 되어 객관식 5지 선다형으로 출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초·중·고 12년 동안 수많은 객관식 문제 풀이 훈련을 거치게 된다. 맞선을 보고 배우자를 잘 선택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이유도 객관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5명 중에서 한 명을 고르라 하면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학교에서 시험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은 바로 학습한 내용의 핵심 요소를 공부하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객관식 문항이 주관식 문항보다 더 큰 장점이 있다. 객관식 문항 풀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해야 핵심 개념을 재학습하게 되며 뼈대가 튼튼해지게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출제할 때 학생들로 하여금 긍정적 사고를 유도할 수 있도록 긍정적 진술의 문항을 출제하라고 장학사들이 요구한다. ‘틀린 것’을 고르시오 라는 부정적 진술의 문항보다 ‘바른 것’을 고르시오 라는 긍정적 진술의 문항을 권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청소년들의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 큰 실패의 함정이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다음은 우리나라 헌법 전문(前文)에 나타나 있는 기본 정신에 대한 진술이다. 바른 것을 고르시오 또는 틀린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항을 비교해 본다.
① 상해 임시 정부의 법통 계승 ②조국의 평화적 통일 ③자유 민주주주의 ④국제 평화주의 ⑤4.19 민주 이념 계승

위의 다섯 가지 진술 내용은 모두 ‘바른 것’으로서 이것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저절로 헌법의 정신에 대한 개념이 잡히고, 시험 문제 풀이하는 과정이 바로 학습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전자와 같은 내용으로 긍정적 진술인 ‘바른 것’을 고르시오라는 문항으로 출제한다면, 위 다섯 개 진술 가운데 네 개의 진실을 뒤집어 거짓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의 진실만 남긴 채 네 개를 거짓된 내용으로 바꿔야 하며, 4개의 거짓 속에서 단 1개의 진실을 찾는 작업이 된다. 만일 학생들이 이런 문항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게 되면 대부분의 세상은 거짓이라는 부정적 사고가 유발될 수밖에 없다. 문제 풀이 과정에서 ‘우리 헌법의 정신’에 대하여 확실한 개념을 잡기도 어렵게 된다.

그러나 만일 후자와 같이 ‘틀린 것’을 고르시오 라는 부정적 진술의 5지 선다형 객관식 문항을 풀이한다면 4개의 진실과 단 1개의 거짓을 읽게 된다. 많은 진실 속에서 하나의 거짓을 찾아내는 체험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세상은 대부분 진실하고 그 가운데 거짓인 하나를 찾아보게 된다. 문항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바로 세상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자연스레 발현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있다. 진실한 세상을 알게 하고 그 중에 거짓을 찾아내는 체험을 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된 세상을 계속 읽게 하고 그 속에서 하나의 진실을 찾도록 할 것인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비판 의식을 심어 준다는 미명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 정의롭지 못한 면, 거짓된 면, 부정적 이미지만을 부각하여 가르치는 일부 특정 교직단체 회원 교사들의 행태와 흡사하다.

미완의 학생들에게 세상의 밝은 면과 진실을 먼저 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진실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원한다면 진실과 긍정의 사회를 먼저 가르쳐 알게 한 후, 건강한 비판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진실을 채 발견하기도 전에 먼저 남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일에 익숙한 젊은이들을 바라 볼 때, 학교에서의 문항 체험의 실패라는 생각이 든다. ‘틀린 것’을 찾도록 하는 문항은 교사들에게는 출제하기 쉽고, 학생들에게는 핵심 개념을 파악하기 쉽게 된다.

청소년들로 하여금 진실과 정의와 긍정의 세계를 먼저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틀린 것’을 골라내는 체험으로 전환해야 한다. 바른 세상을 제대로 알게 한 후, 틀린 것을 찾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온갖 엉터리 세상, 거짓 세상을 나열하여 읽고 또 읽게 한 후, 그 속에서 단 하나의 진실만을 찾는 훈련을 하고 있는 작금의 교육 지도 행태는 은 국민의 건강한 가치관 형성에 기여하지 못한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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