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행사참석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런데 항공편이 맞지 않아서 제주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했다. 행사장에 바로 가면 거의 두시간 이상 시간이 남게된다. 일직 도착하면 주최측을 도와주기도 뭣하고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마침 행사장이 공항근처라서 이기회에 한번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제주도는 걷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북부 해안선을 따라 행사장까지 약 10km를 걸었다. 직선으로는 4km도 안되는 거리지만 일부러 이곳저곳 들러서 갔다. 이렇게 해서 현장에 도착하니 시간이 대충 맞았다.
제주공항 옆길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지만 바로 머리위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신기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땅위를 걸어가는 나 자신과 비교도 되었다. 그러나 저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도 내리면 걸어야 한다.

나는 걷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취미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즐기는 것이다. 등산이나 골프같은 취미는 돈도 많이 들고 나름대로 기술을 익혀야 하지만 걷기 위해서는 돈이나 전문성이 필요없다. 그냥 아무데서나 준비없이 걷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에 시간을 내어 걷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운전을 하다보면 곳곳에서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곳을 발견하지만 몰고 온 차를 처리하지 못해 포기한다. 이럴 때 자동차는 거추장스런 짐이 된다
알고보니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운동삼아 걷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공원에 가보면 산책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학교 운동장에는 밤에 운동장을 도는 사람도 매우 많다.
관광지를 걸으면서 즐기는 관광상품도 많다. 올레길이나 해파랑길과 같은 걷기 위해 만들어진 길도 있다. 나처럼 그냥 일반도로를 걷는 사람도 많다. 대도시 생활에 BMW(Bus, Metro, Walking)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 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걷는 순간에도 일을 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특히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일은 대부분 걸으면서 한다. 글을 쓸 구상이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은 걸으면서 해야 잘된다. 사무실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같은 기계가 발달되어 멀티테스킹이 가능하다. 혼자서 걸으면서 일을 하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서 좋다.

실제로 우리말에도 일과 걸음을 연결한 표현이 많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발로 뛴다고 한다. 차근차근 하는 것을 한걸음 한걸음씩이라는 표현을 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다.
결국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걸어야 한다. 걷기를 거부하면 일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더라도 본질은 같다.
또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일을 한다는 말도 된다. 어떤 현상을 확인하러 현장에 가서 볼 때는 비록 걸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가보는 것이라도 발품을 판다는 말을 한다.

제주도 해안을 걷다가 유명한 용두암을 만났다. 용두사미라는 말이 생각난다. 마침 사무실 근처에 길죽한 돌이 있어서 사미석이란 말을 붙였다. 용두암과 사미석을 합하여 용두사미를 만들었다.
일이 용두사미가 되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 말로서 계획을 이야기할 때 거창한 용머리지만, 실제로 발로 뛰면서 마무리할 때는 뱀꼬리가 되는 것이다. 말만 앞서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런 표현도 걸으면서 현장을 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친구들이 주말을 이용하여 영양의 유명한 외씨버선길을 몇차레로 나누어 완주하는 이벤트를 만들었다. 나도 동참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아쉬운 마음은 제주도의 걷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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