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한국 U&L 연구소

‘미래는 과거의 관성으로 나타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이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부끄러운 과거사를 미화하고 부도덕한 침략사를 합리화하는데 있다고 보인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이러한 일본을 욕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미래의 희망으로 나갈 수 없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은 주변국를 침략하고 도덕적 만행을 저질렀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재의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했고, 우리와 혈맹국인 미국편에 바싹 붙어 있으므로 우리는 미국과 공조 외교 정책을 잘 유지한다면 국익을 위하여 일본과 선의의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시 과거의 적대적 정책으로 회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 한국인들 가슴 속에 있는 식민 사대 사관을 극복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과거사를 되찾는 일이며,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하여 국제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오늘날의 국제 정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물어보아야 한다.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주) 미래앤을 살펴보니 총 412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고조선’ 겨우 2쪽, 삼국 시대 10쪽, 신라와 발해 6쪽, 고려 14쪽, 조선후기까지 40쪽, 구한말까지 100쪽, 일제 강점기 106쪽, 해방후 98쪽으로 편성되어 있다. 5천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수치스런 근현대사 부분만이 지나치게 많고, 국권 상실 기간 사회주의 운동 부분이 너무 강조되어 있으며, 책을 읽을수록 자긍심보다는 짜증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사실에 대한 검증이 채 완성되지 않은 현대사 부분의 분량이 너무 많다. 상대적으로 민족의 뿌리에 해당하는 자랑스러운 고대사 부분이 거의 생략되었고,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동이(東夷)’에 관한 언급이 아예 없다.

역사를 부정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안중근 의사의 말이다. 고대사는 곧 현대사이다. 안중근을 연구하는 이덕일 선생의 말이며, 현재의 한국인들이 스스로에게 외쳐야 할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픈 과거사에서 건강한 교훈을 얻어 대비하지 않으면 그 아픔이 또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넘어진 그 곳에서 또 넘어지는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바보다. 우리가 역사를 분석 종합하여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는 이러한 아픔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된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이 조선인들 보다 먼저 일본인들이 먼저 읽고 전쟁 패배를 분석하고 재무장의 기회를 제공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의 강단 사학계에서는 아직도 1) 일본의 역사 왜곡에 별 생각 없이 동조해 버리고, 2) 중국의 동북 공정에 맞추어 버리고, 3) 스스로의 역사를 최대한 낮추어 버리고, 4) 한국 근대역사학의 아버지 신채호 선생의 책을 읽어보지도 않거나, 5) 읽더라도 그 내용의 진위 여부를 검토해보지도 않고 폄하하고 있으며, 6) 분명히 실존하는 역사를 애매모호하게 감추어 버리고, 7) 정말 열심히 상고사를 연구한 학자들을 강단에서 배척하고, 8) 사상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좌편향 사관을 지닌 자들이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하고 있으며, 주류를 유지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국제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다른 나라의 역사를 함께 공부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은 세계사를 거의 공부하지 않고 있다. 대입 수능 사회 탐구 과목에는 한국사를 교양 필수로 하고 있지만,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한국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동아시아사, 세계사, 법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 이렇게 9개 과목이 있고, 이 가운데 2~3개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 중고등학교에서는 사회교과의 분류는 학생들의 지적 발달 수준에 맞추어 지리, 역사, 윤리, 정치, 법, 경제로 분류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교원 양성과정인 대학의 학과에 따라 지리, 역사, 일반사회의 3분법에 매몰되어 있다. 자연과학은 자연현상 연구 대상에 따라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으로 제대로 분류되어 있는 반면, 사회과학은 사회현상 연구대상에 따라 지리, 역사, 정치, 경제, 사회문화, 법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있다. 중1 때 배운 ‘한국 지리’과목을 고3 대입 수능 과목으로 선택하여 배우게 하고 있으며, 고3 때까지 헌법과 정치에 대하여 단 1시간도 공부하지 않은 학생이 법학과와 정치학과 진학할 수도 있게 된다. 과거처럼 모든 고등학생은 정치와 경제, 세계사를 일정부분 학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지만 현행 사회과 교육과정은 민주 시민의 기본 자질 함양과 직접 관련 있는 정치, 헌법, 경제, 세계사 등의 과목을 거의 배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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