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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부활 그 찬란한 새벽이여”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봄 길이 화려하다. 들길은 아지랑이가, 산길은 진달래가 길을 열고, 하늘 길은 새들이, 바다 길은 봄바람이 길을 연다.
봄은 꽃들의 향연이다. 눈길 돌리는 곳마다 제각기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하얗게 핀 목련화는 정결하게 살고자 하는 순수를 가르친다. 새색시 같이 핑크빛을 전하는 복사꽃은 고향의 그리움과 따뜻함을 전한다. 그리고 보라빛 라일락꽃은 귀족적인 우아함을 드러낸다. 그런 것 같다. 봄의 향기는 먼 그리움이 현실이 되어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한다.
봄은 생명을 잉태하기위해 오랜 침묵의 시간을 기다렸다. 바로 추운 겨울이었다. 긴 겨울의 기다림은 봄을 잉태하는 전주곡이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했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 땅을 밟았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선교사들은 두려움과 공포와 죽음을 뛰어넘어 어둡고 척박한 조선 땅에 복음을 뿌리므로 오늘날 우리나라는 부활절을 통해 이렇게 그 찬란한 새벽을 노래하는 나라가 되었다.
레오나르도 보프의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삶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죽음에 삶 키우지는 않는다. 그것은 죽음을 통하여 완성되고, 승리한다. 인간은 죽기 위하여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부활하기 위하여 죽는다. 죽음은 그리스도의 부활에게 삼키우고 말았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하는 고난주간이 시작된다. 기독교인들은 이 주간에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과 절제 그리고 섬김과 희생의 길을 걸어간다.
폴 틸리히란 신학자는 "모든 사람의 얼굴은 그의 생명에 죽음이 현존(現存)하고 있다는 자국을, 즉 죽음에 대 한 공포, 죽음에 대한 용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념의 자국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의 삶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죽음의 세력 아래서 태어나서 죽음의 길로 한걸음씩 다가선다. 그래서 인생이란 죽음으로 달려가는 존재다.
인간의 죽음은 자연적인 것이다. 모든 생물은 태어났다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죽는다. 인간도 결국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기3장19절)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돌이켜 멀어지신 것이다. 죽음은 육체적 생명의 정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영적인 생명의 종말이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정복한 유일한 분이시다. 그래서 부활은 빈 무덤이다. 따라서 부활은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부활은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가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는 것이다. 끊어졌던 전기가 다시 이어져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끊겼던 수도관이 이어지면서 물이 다시 나오는 것처럼, 단절되었던 생명의 줄이 다시 이어지므로 우리 속에 생명이 넘쳐흐르게 된다. 이것이 부활이다. 부활은 단순히 미래적인 사건이 아니다. 부활은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 현재적인 사건이다. 죽음은 더 이상 우리의 전인적인 삶을 억압할 수가 없다. 인간의 죽음은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이제 부활의 계절이다. 생명의 빛이 눈부시다. 모든 자연이 초록색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아직 남아 있는 미움과 절망과 우울과 죽음의 잔재들을 말끔히 씻어 내야한다. 우리 속에 죽음의 독소인 불안과 걱정과 근심들을 모두 쫓아내야한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부활은 이천년 전에 일어난 기적의 사건이면서 오늘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현재적 사건이어야 한다.
우리 중에 누군가 실패했다고 여기며 인생의 밑바닥에서 이제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부활은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절망의 자리에서 희망의 자리로, 실패의 자리에서 성공의 자리로, 원망과 불평의 자리에서 감사의 자리로 바뀌는 것이다. 부활의 계절에 봄은 겨울을 지나 먼 길을 찾아 왔다. 우리도 지금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부활은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활은 또 하나의 희망이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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