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집 인근의 아파트 재개발 공사장 가림막에 지역명소를 찍은 대형사진이 붙어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저런 곳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옆에있는 학교와 다른 아파트 담벼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학교의 벽화를 보니 축구부가 있고 학생들이 취미로 날뫼북춤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 도심 곳곳에 벽에 사진이나 벽화가 있는 건물을 많이 본다. 예전엔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던 벽화가 도심 곳곳에 진출했다. 심지어 시골마을 담벼락에도 있다. 관의 지원도 있다. 얼마전 아파트 옹벽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동사무소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도시미관을 위한 투자인 것이다.
요즘 페인트 성능이 좋아졌고 작화기법도 발달하여 벽화를 그리기 쉬워졌다. 그림 수준도 상당히 세련되어 상업미술과의 경계도 애매할 정도다.

삭막한 시멘트 벽만 있는 것보다 그림이 있으니 보기 좋다. 벽화를 이용해 건물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도시를 홍보하거나 역사적 기록을 하기도 한도 있다. 도심의 쇼윈도우와 변두리 건물의 벽화가 조화를 이루면 전체적으로 도시의 미관을 구성하여 관광자원이 되는 기대를 하여 본다.

벽화가 그려진 벽을 보면서 벽의 기능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건물에서 벽은 외부의 침입을 막아 안에 있는 사람이나 시설을 보호한다. 동시에 외부와 차단이라는 안좋은 뉘앙스도 있다. 기능적인 면이 아닌 이미지 차원에서는 좋지 않는 느낌을 준다.

벽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많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을 벽에다 대고 말을 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한다. 베를린 장벽은 분단의 상징이다. 초등학생시절 교과서에서 본 거인의 집이라는 글에서 담으로 둘러쌓인 거인의 집은 봄에도 눈이 내리는 곳으로 묘사되었다.‘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 면장은 담을 면한다는 뜻으로‘담’이 정보의 차단하는 수단이 되었다.

결국 소통과 이해를 위해서는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말로 연결된다. 그래서 이미지 메이킹으로 장벽을 파괴하는 퍼포먼스가 등장한다. 허물어야 하는 장벽으로 시간의 장벽, 공간의 장벽, 지식의 장벽을 들기도 한다. 대학같은 공공기관의 ‘담장허물기 운동’도 이런 차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벽에 무엇인가 표시되어 있으면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벽 자체는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골목 같은 곳에서는 담벼락만 볼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벽면에 포스터나 광고물을 게시하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이 읽는다. 공공의 정보는 이런 형식으로 전달된다. 박물관의 전시대는 벽을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영화관의 스크린이나 전광판은 벽이 변한 것이다. 게시판이나 간판은 벽의 연장이다.
따져보면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정보전달 방법으로 벽화가 그려졌다. 종이가 없었을 때는 벽면이 유일한 기록매체였다. 동굴벽화는 원시인이 생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SNS와 인쇄매체가 발달된 요즘도 벽이 나름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선거벽보나 각종공고문, 포스터 같은 것은 벽에 붙여놓아야 볼 수 있다. 특히 비공식적 정보는 벽을 이용하여 많이 전달된다. 대학다닐 때 많이 보아왔던 대자보는 이런 비공식적 정보의 전달 수단이었다.

세대간 장벽을 이런 식으로 정보전달 매개체로 승화시킬 수 없을까. 신구세대간 서로 이해못하는 사고의 장벽을 오히려 정보 교환수단으로 볼 수 없을까? 어차피 없어지기 어려운 장벽인데 구지 허물려고만 하지 말고 장벽에 붙어있는 정보라도 서로에게 제공하할 수 없을까? 충분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요즘은 반대로 오히려 정보가 장벽이 되는 현상도 있다. 정보화의 적응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5G세대 등 고도화된 정보화 시대에 텍스트 뿐만 아니라 고화질 고용량의 그림과 동영상이 넷망을 오가고 있다. 사이버에 익숙하지 못하는 고령층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다. 정보화가 세대간 연결을 차단하는 장벽인 것이다.

벽과 정보의 관계는 참으로 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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