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였다. 초등학생 시절 이순신 장군 탄신일은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태양이요, 역사의 면류관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칭송되었다. 전쟁영웅을 뛰어넘는 성웅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탄신일은 1973년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우상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연구가 많다. 몇년전 서울에서 근무할 때 사무실 근처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옛인물들 중 오늘날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면 당선을 기대해 볼만한 인물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정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민족의 태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다른 사람들도 이정도 수준에서 그를 칭송할 듯 하다.

어릴 때 이순신 장군에 대해 매우 용감하고 싸움을 잘하는 장군으로 알고 있었다. 시대를 잘 만났으면 칭기즈칸처럼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광개토대왕, 알렉산더 같은 정복자의 위인전을 많이 읽었는데 이순신 장군은 이들보다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결코 못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워 23전 23승 불패의 전적으로 조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이순신 평전과 같은 책을 읽어보았는데 약간 실망스럽게도 정복하는 공격자가 아니라 방어하는 수비자였다. 그에게는 세계를 정복할 군대는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를 정복할 야망도 없었다.
그의 군대로는 외국에 진출하여 세계를 정복할 작전이 불가능했다. 그의 전투는 대부분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이용하여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이긴 것이다. 그나마 무모한 상황에서 싸워 이긴 명랑해전도 알고 보니 상대방인 왜선 133척을 전멸시킨 것이 아니라 그중 1/4인 31척만 부수어 예봉을 꺽은 후 재빨리 대피하여 시간을 번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현실세계에서 이루기 어려운 대단한 전공임은 분명하다.
그는 조금이라도 패배할 가능성이 있는 전투에는 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수비수였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7년이나 지속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치룬 전투가 23차례밖에 안된다는 사실에서 불필요한 전투를 회피했음을 알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비겁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인 것은 우리민족으로서는 다행이다. 조선은 징기즈칸의 몽고같은 정복전을 펼칠 나라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만약 정복 성향의 장군이었다면 조선은 국가 유지가 어려웠을 것이다. 징기즈칸의 몽고와 우리나라의 현재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정복이 얼마나 무모한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정복을 하더라도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군사력의 과도한 보유도 국가로서는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군대 운영은 병참이나 인사 등 복잡한 기능이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침략적인 전쟁은 부인한다. 군대는 나라를 지키는 기관이지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다.

요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보수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 장기간 생존에 도움을 준다. 진정한 용기는 불필요한 위험에 뛰어드는 만용이 아니라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다.
베스트 드라이버는 운전을 빨리하는 카레이서가 아니다. 오히려 안전하게 운전하는 사람이다. 미리 속도를 줄이고 과속을 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미리 피하는 것이다. 야생에서는 맹수도 무모하게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보다 조금 약한 동물이 있더라도 그들의 먹이를 빼앗아 먹기는 해도 그동물을 잡아먹으려고 까지는 않는다. 사냥감도 어리거나 병든 동물을 먼저 잡아먹는다고 한다. 야생에서 사냥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선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된다.

현실세계에서 일당백의 영웅이 나오기 어렵다. 중국의 삼국지나 무협지처럼 혼자서 적을 모두 무찌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손자병법에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知彼知己), 百戰百勝이 아니고 百戰不殆(위험하지 않다)로 되어있다. 그리고 백전백승이 반드시 최선이 아니라는 구절도 있다고 한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싸우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이를 보면 위험을 피하거나 수비를 잘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인 듯 하다.

지금은 관심이 희박해진 이순신 장군 탄신일을 맞아 과거에 그에게 기대했던 허무맹랑한 정복전이 아니라 안전한 나라를 위해 수비에 치중한 그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어 이런 글을 한번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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