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직장 근처 유서 깊은 어느 시골마을에 효자각이 하나 있다. 사연을 보니 위독한 부모님을 살린 내용이다. 나의 경우와 비교하여 보았다.

나는 막돼먹은 불효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극한 효자라고 할 수도 없다. 다만 효자각의 내용보다는 큰 효도를 하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과거 부친께서 위독하실 때 적시에 병원에 모셔드려 여러번 위기를 넘기게 하였다. 치료 결과만으로 보면 과거에는 하늘이 내린 효자라야만 할 수 있었다.

물론 현대 의술과 사회시스템 덕분이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 조상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대처를 했다. 과거에 이런 일을 당하면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경험자가 많을 것이다. 이제 효도는 개인의 효심에만 기대를 해서는 안되고 시스템이 뒷받침되야 한다. 효자 여부는 평소 태도와 마음이 중요하지 결과만으로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될 듯하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 하고 동시에 자녀의 효도를 받을 수도 있는 연령이다.
현실적으로 자녀에게 대단한 효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카네이션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그 외에 용돈을 받는다거나 다른 큰 선물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 정서상 부모님께 하는 효도는 달라야 한다. 돈과 시간을 투자한 효도를 해야 한다. 부모님을 직접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시간을 내어 찾아 뵙고 용돈도 드리고 해야 한다. 효도를 받기 보다는 효도를 해야 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일이 된다.

효도와 함께 자녀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효도에 비해 자녀양육은 별로 강조하지 않았다. 맹모나 신사임당 외에 자녀를 잘 길렀다는 사례도 별로 없다. 효자각처럼 자녀를 잘 기른 부모를 기린 비석도 없다.
현대는 자녀양육에 더 비중을 둔다. 열손가락 물어 안아픈 손가락이 어디있으랴만은 저출산으로 소수의 자녀를 낳기 때문에 자녀가 더욱 귀해졌다.
자녀사랑은 효도와 달리 마음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너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녀가 알아서 클 수도 없다. 때로는 무리한 욕심이 자식에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단순한 사랑을 넘어 부모의 희생이 필요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평상시에 부모님께 하는 효도는 미흡해진다. 과거의 기준으로 불효자가 될 수 있다.

우리 같은 40~50대 중년은 낀세대이다. 결혼 후 자녀가 있으면서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봉양해야 한다. 노후대비라는 개념이 없었던 부모세대와 기성사회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자녀세대 사이에서 서로의 눈치를 봐야 한다. 당장 이들 모두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도 있다.

결국 손해를 보게되는 세대다. 부모에게 받은 혜택에 비해 자식에게 베풀어야 하는 서포터는 훨씬 더 부담스럽다. 지금 우리가 자녀에게 하는 만큼의 보살핌을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우리보다 자식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일단 지금과는 달리 형제들이 여러명 있는 집안내부의 경쟁 속에서 알아서 커야 했다.

지금 우리가 노부모에게 하는 수준의 봉양도 장래에 기대할 수 없다. 지금 사회를 보면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 젊은이들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결혼을 기피하는 분위기라서 부모봉양도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처지에 퇴직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아직 취직을 못한 자녀를 양육하고 노부모를 봉양하는데 큰 부담을 느낀다.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할 여유도 없다.

그러나 우리만 어렵다고 하소연 할 수도 없다는데 낀세대의 애환이 있다. 부모세대나 자식세대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개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흐름 때문에 맞이하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의 효도나 자녀양육에 있어서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을 사회시스템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같은 낀세대도 숨을 돌릴 수 있다. 우리의 장래를 책임지라고 하기에는 자녀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된다. 세대간 공평이라는 개념에서 사회시스템에 좀더 투자를 했으면 한다.

연휴기간에 포항에 계신 노모를 뵙고 왔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어머니를 보며 생각해본다. 고향집에 홀로계신 부모님께 무엇을 해드려도 완전한 효도는 아니다. 비록 나중에 우리가 자식에게 똑같이 받을 것을 기대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래저래 낀세대의 어버이날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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