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민주노총 포항지부장

조선 태종때 원통하고 억울한 백성이 대궐에 매달린 북을 쳐서 나랏님에게 원억을 호소하던 제도가 신문고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지금의 청와대 국민청원도 신문고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대통령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도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도의 취지에 비춰보면 입법기관인 국회가 법을 제정해야 해결되는 포항지진특별법(이하 특별법)은 국민청원제도의 취지와 간격이 있다 할 것이다.

더욱이 국민청원 시작 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열발전소가 일으킨 촉발 지진으로 판명 난 포항지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바 있었고, 여야 5당들도 이구동성으로 조속하게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한 대로 지난 17일 청와대는 20만명 이상이 서명한 특별법 제정 국민청원에 대해서 국회차원에서 논의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면 정부도 최선을 다해 협력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포항시민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청와대가 할 수 있는 답변은 그것 밖에 없다. 입법권한이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청와대가 법제정 권한이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공약한 각종 개혁입법들이 벌써 제정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급한 민생법안들이 표류하고 있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법은 국회에서 여야 정당 간 합의로 만들어진다. 국회가 빨리 열려야 특별법이 논의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회는 문이 닫혀 있다. 정쟁에 여념이 없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내년 선거는 보여도, 특별법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특별법은 현실상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도 연내에 제정되기가 버거워 보인다. 여야간 협의, 정부의 법률안 성안, 상임위 통과, 본회의 통과, 법 공포,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 등 산넘어 산이다.

더욱 회의적인 것은 아직 법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법안이 제출되어 있고, 다른 야당인 바른미래당의 법안도 제출되어 있지만 여당인 민주당은 특위구성을 제안하고 있어 여야 간의 견해차이가 큰 데다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서로 마주 앉기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 20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1년 남짓 밖에 남지 않았다. 임기 6개월 전부터 선거국면으로 접어드는 전례에 비취 봤을 때 특별법을 만들 시한은 사실상 7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의 여야 간 극한 대립국면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까지 감안했을 때 특별법은 20대 국회 임기 안에 제정될 가능성이 낮다. 만약 20대에서 해결되지 않고 차기로 넘어가 새로운 국회의원으로 사람이 교체 됐을 때는 하세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역 정치인들은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지열발전소로 인한 촉발지진이라는 발표 직후 실효성 없는 국민청원과 관제데모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특별법 제정에 매진 했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단체장이 중앙부처를 찾아가 형식적인 면담을 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도자료를 내는 식의 행보는 구태의연한 구시대의 보여주기식 정치이다.

관변단체를 동원해서 궐기대회를 열고 국민들이 반감을 일으킬 수 있는 문구로 현수막을 도배하는 행위 또한 특별법 제정에 소탐대실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엇이 포항을 살릴 수 있는 길인지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면서 중앙정부와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이 사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 이래 최초의 인공지진이라는 재앙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시민들의 고통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지역 단체장들과 지역 국회의원들부터라도 정쟁 행위 불참선언을 해야 한다. 또 여야 각당 지도부에 정쟁중단 호소를 하고 정쟁 중이라 할지라도 포항지진이나 강원도 산불 등 재난 해결에 필요한 특별법 제정 등은 진행하는 특단의 대책을 촉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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