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한국U&L연구소장(전 중등교장)

좌(left)와 우(right)의 개념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해 프랑스 제헌 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우측(右側)에는 보수 세력인 제1신분 성직자 대표와 제2신분 귀족 대표가, 좌측(左側)에는 급진파인 제3신분인 평민 대표가 자리 잡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한다.

급진적 성향의 개혁파를 좌파(左派), 온건적 성향의 보수파를 우파(右派)라 불렀던 것으로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 구도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며 이제 조작적으로 정의한 용어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21세기 한반도는 지구 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정치적 경제적 대립 구도 상황에 놓여 있다. 남쪽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 정치 경제 체제를 선택해 기적적인 수준의 번영을 이룩했고, 북쪽은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사회주의, 전체주의, 1인 신격화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초군사국가가 됐다.

정부수립 후 70년 동안 정치 체제의 차이가 경제력 규모에 있어서 76.5배의 차이를 가져왔다. 남북 모두 역사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통일을 지상 과제로 강조하고 있으며, 남측은 경제적 번영을 힘으로, 북측은 핵무기와 군사력을 힘으로 통일에 접근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특이할 점은 북한의 핵무기 완성과 실전 배치를 앞둔 상황에서 남한 사회는 좌우의 양측으로 갈라져 해묵은 이념 논쟁에 빠져들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좌측(左側)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적 사고로 사회주의 정책을 선호하며, 사회주의 국가와 친교하길 원하며, 북한의 핵무기를 내심으로 인정하고, 우리 민족끼리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큰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우측(右側)은 시장 친화적 사고로 민간 경제의 활성화 정책을 선호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추진하지 않으면 남한은 사실상 노예의 평화가 될 것이라 우려하며 사회주의 국가로 가는 길은 곧 경제 폭망의 길이라 믿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이루고 있다.

좌우 두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과 충돌은 좁힐 수 없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근거하면서 민생, 경제, 외교, 안보 면에서 불꽃 튀는 격돌이 진행되고 있다.

좌파 진영은 진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감성에 호소하며 미래 행복과 번영을 약속하고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정의와 평등을 강조하며 모두가 잘살 수 있도록 국민 세금을 인상해 보편적 복지 정책을 무모하게 시행하는 등 사회주의화 정책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다.

좌파 진영은 안보 면에서 우리가 먼저 무장해제를 하면 북한도 무방비 상태인 우리에게 총을 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순진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좌파 진영은 수 천 년 동안 한국인에 대한 패권 침략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중국에 순종적이며,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맺은 한미일 동맹 공조를 강조하는 우파를 적폐로 몰아가며, 다시 일본과 적대적 관계로 회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사회주의는 언제나 번영을 약속했지만 결국은 궁핍을 가져왔으며, 국민의 단결을 외쳤지만 증오와 분열이 오히려 격화됐다. 사회주의는 늘 더 나은 미래를 약속했지만 과거에 집착, 회귀했으며 국민의 다양성을 용인하지 못하였고,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강요했다.

사회주의는 국민들에게 정의와 평등을 외치며 복지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했지만 가난함을 구제하는 일에도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화는 오히려 전쟁을 위한 수단이었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표를 얻은 권력층들의 부정과 착취와 부패가 오히려 넘쳤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서부터 공공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규모, 비중,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그러면서 사회주의는 오히려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독재 권력이 발생하게 되고 그들은 점점 더 많은 권력을 갈망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지배계층은 국가의 모든 결정권을 직접 가지려 했으며, 경찰, 검찰, 법원, 국방, 교육, 언론뿐 아니라 에너지 산업, 의료서비스, 교통, 금융 등 민생 경제 전반을 통제하려 했다. 구소련과 동유럽, 중국과 북한뿐 아니라 그리스, 터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사회주의 체제를 선호했던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난 비극적 결과였다.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결과는 처절한 실패로 이미 결론이 난 이 시점에서 왜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번영을 이룩한 한국인들은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이렇게 좌파에 열광하며 사회주의 정책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일반 대중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정보를 바르게 분석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본능과 감성에 의해 선악을 느끼기 즐기며, 네트워크 정보를 활용한 선동 선전 마케팅 전략에 따르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고 싶은 현상만 바라보고 알고 싶은 정보만 가지고 있으므로 확증(確證) 편향(偏向)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리고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자유’를 민주주의 앞에 빼려고 하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정책을 모방하게 되는 기(奇)현상이 나타나게 되지만 대중들은 무감각하게 반응하고 있다.

1970년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솔제니친이 ‘공산주의는 약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정신병자와 같다’고 했는데, 지금 한국인들의 국가관을 두고 하는 말로 들려진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가.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을 것인가.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더욱 복 되도다’라는 말씀처럼, 사회주의를 체험하고 궁핍과 패망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자유주의를 믿고 선택하는 현명한 국민들이 되길 바란다.

사회주의를 선호하기 때문에 현 정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좌파 정책을 선호하는 비율과 현 대통령 지지 여론 조사가 일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현 정부의 민생, 복지, 경제, 안보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과 사회주의로 폭망한 베네수엘라의 정책이 얼마나 비슷한지 꼼꼼히 비교해보고 판단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한국동란을 전후해 ‘자유의 상실’ 체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의 가치를 알고 사회주의를 혐오함으로 우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자유와 풍요의 혜택 속에서 ‘자유의 상실’ 체험이 없는 사람들은 자유보다 복지를 선호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특별한 혐오감이 없으므로 좌파를 지지하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 가운데 사회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말하면서 좌파들의 정책을 지지하는 이상한 경우가 나타나는 것은 기존의 보수 세력들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右)로 번영한 한국이 쉽게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좌우(左右) 모두 복지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쟁하며 좌(左) 클릭한 때문이다.

‘내가 먼저 총을 버릴 테니 너도 내게 총을 쏘지 마라. 우리는 친구다.’ 마치 서부 영화에 나올 법한 멋진 용기처럼 보일 수 있다. 침략과 갈등의 오랜 인류의 전쟁사에서 한 나라가 먼저 무장 해제함으로 실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 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대립 상황에서 먼저 총을 버리는 것은 평화로 가는 길이 아니라 노예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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