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부중 경북동부본부장

▲ 장부중 경북동부본부장
울창한 금강소나무숲이 자리 잡고 있는 울진의 산간지역은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는 높은 산봉우리로 가득하다. 그런데 등짐 가득 짊어지고 이런 험난한 길을 넘던 옛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선질꾼 들이다. 이들이 넘던 길은 울진의 동서방향을 연결하던 십이령이다. 굽이굽이 12고개가 있다고 해서 이름 붙은 십이령은 험중하기가 이루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사연이 있다.
십이령을 넘나들던 선질꾼들은 봉화 소천장, 현동장, 봉화장, 춘양장, 울진장, 흥부장을 돌아다니며 물품의 유통에 정성을 들었으며, 주로 울진 어촌지역에서 생산한 각종 어물, 미역, 소금 등과 경북 내륙의 농촌에서 생산한 쌀과 보리, 과일, 담배, 옷감 등의 물자를 유통시키며 당시 선질꾼들이 주로 다니던 시장과 유통 물품이 드러난 민요가 전해지고 있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은 언제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가노/ 반 평생을 넘던 이 고개를 넘는구나/ 서울가는 선비들도 이 고개를 쉬어 넘고/ 오고 가는 원님들도 이 고개를 자고 넘네/ 꼬불꼬불 열두 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이처럼 십이령을 넘나들던 선질꾼들은 울진과 봉화에서 활약했던 보부상단이 일제강점기에 들어 쇠퇴하자 그 자리를 대신 했다. 선질꾼들이 부르는 이름은 선질꾼, 등금쟁이, 바지게꾼 등으로 다양하다. 선질꾼들은 서서 지게 짐을 지고 쉴 때도 서서 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하며, 언젠가부터 바지게를 들고 다닌다 하여 바지게꾼, 등에 짐을 짊어지고 다닌다고 하여 등금쟁이로 불렸다.
당시 선질꾼들은 여러 사람이 함께 다녔으며, 그 수가 많으면 10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통 형편이 비슷하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패를 이뤄 다녔으며, 이렇게 무리를 지어 다닌 것은 도적이나 산짐승의 위험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여럿이 함께 다니면 도적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했고, 만약 위험을 가하면 선질꾼들이 다함께 대응했다.
지금도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를 비롯해 여러 산촌마을에는 선질꾼들을 보았거나 그들과 함께 다니던 주민들이 많이 생존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선질꾼들을 대상으로 주막을 운영했던 사람들도 현재 노령으로 거주하고 있다.
특히 내성행상불망비는 금강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철비(鐵碑)이다. 보통 돌로 만든 비석을 세우는 것과 달리 철로 만들어 비를 세웠다는 특징이 있다. 철비는 두 기가 함께 세워져 있으며, 각기 정한조와 권재만이라는 사람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1890년도에 제작해 설치했다.
이 철비가 울진에 세워진 까닭은 조선 말기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각종 해산물을 곡물, 의류, 약제 등을 유통하던 상인들이 그들의 생업에 큰 도움을 준 정한조와 권재만을 기리고자 비를 세웠다. 접장 정한조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는 높이가 93.3cm, 촉 23.1cm, 두께는 2.2cm, 무게는 26kg 정도이다.
비신에는 ‘내성행상접장정한조불망비(乃城行商接長鄭漢祚不忘碑)’라고 양각되어 있으며, 반수 권재만을 기리는 비는 높이 94.5cm, 폭 24.8cm, 두께 2.1cm, 무게 29.4kg이며, 비신에는 ‘내성행산반수권재만불망비(乃城行商班首權在萬不忘碑)’로 쓰여져 있다.
금강소나무숲길은 2006년 조성의 필요성을 인식한 산림청이 2007년 기초조사, 2008년 기본계획수립, 2009년 실행계획을 확정하고, 2010년 산림청 . 울진군청 . (사)울진숲길이 금강소나무숲길 조성과 운영에 과한 협력 MOU를 체결하면서 개통됐다.
산림청이 국비로 조성한 1호 숲길인 금강소나무숲길은 자연 그대로를 살린 친환경적인 숲길이다. 더구나 예약탐방과 가이드제, 민.관협력 거브넌스로 책임여행과 공정여행을 지향하며, 주민소득은 물론 금강소나무와 산양 등 자연환경을 보전하는데 기여하는 생태관광의 대안 모델로 각광받고 있는 울진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