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최근 정부는 교육목적으로도 자녀를 체벌하지 못하도록 민법에 있는 '징계권'에서 체벌을 삭제할 것이라고 한다. 사랑의 매도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칫하면 가족인 자녀와 이웃집 아이들간 경계가 모호해질 우려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가정의달 5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이 모두 지났다. 이달이 지나가기 전에 가족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몇년전 모임에서 대학교수인 친구가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한다. 초등학생인 아들이 하루종일 반려견하고 지내며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강아지를 팔아 버렸다고 한다. 아들은 마치 가족을 잃은 것처럼 슬피 울더니 이후에 부모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더라는 것이다.
다음의 말은 충격적이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부모가 늙으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가족인 반려견을 버렸으니 똑같이 가족을 버릴 수 있다는 가치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나이로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젊거나 어린 세대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한다. 도시에 사는 자녀가 반려동물을 돌본다는 핑게로 명절에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선천적으로 혈연에 의해 성립한다. 후천적으로 혼인과 입양이 있다. 결혼을 하여 혼인신고를 하면 민법상 부부가 되어 가족으로 인정된다. 여기까지는 법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가족이다.
법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정서적인 가족도 있다. 군대에 입대하니 소초원들이 서로 가족이라고 한다. 혈연은 아니지만 계속 같은 숙소를 사용하며 숙식을 같이 하니 가족처럼 지낸다는 말이다.
과거에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났다며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었다. 자주보면서 친하게 지내고 정이 들면 가족에 준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청소년기가 되면 가족보다는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강하게 된다고 한다. 친한 사람끼리 형, 오빠 등 가족관계의 단어로 호칭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가족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과거의 대가족이 핵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들이 자녀를 많이 낳지도 않는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나홀로 세대가 많다. 취직이 안되니 젊은이들이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에서 포기대상에 결혼은 꼭 들어간다. 가족의 규모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정상적인 가족도 함께 모이는 시간이 없다. 서로 바쁘고 관심사가 달라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고 있고 기성세대는 젊은 층을 철없는 세대라고 보는 사고방식의 단절도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외톨이로 사는 사람도 많다. 대인기피증 등으로 폐쇄된 세상에 살며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다. 익명의 사회에서 표시도 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의 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가족이 없더라도 혼자 살 수 없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같이 지낼 존재를 찾는다. 이때 같이 지내는 존재가 인간은 아니지만 가족이 된다. 가족의 크기는 작아지면서 가족으로 여기는 대상은 확대되는 추세다.
가장 일반적인 비인간(非人間) 가족은 반려동물이다. 사람은 나를 속이고 배신하지만 반려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등 이유도 많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산부인과는 줄어들고 애견숍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자식보다 반려견을 더 많이 챙겨주는 분위기가 생길까 우려되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은 스마트폰이 가족이 된다. 하루종인 스마트 폰만 들여다 보는 사람이 많다. 동물인 반려견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계인 스마트폰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어차피 똑같이 인격이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기계와 친분은 훨씬 어색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마트 폰에 인격을 부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AI가 발달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4세 어린이가 하루 1시간 이상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 화면을 지속해서 들여다 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나이에 스마트폰이나 TV를 볼 때 놀라울 정도로 빠져드는 집중력이 있다고 한다. 몇십분동안 눈도 깜박이지 않고 보고 있는데 이쯤되면 장차 가족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아닌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가족으로 살려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며 살아야 한다. 가족의 자리를 반려견이나 스마트폰에게 빼앗기는 것이 싫어서 좀 더 가족과 얼굴을 자주 대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을 만들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