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한국U&L연구소장)

한국 근현대사에서 사회의 지도층 또는 지식인들은 권력과 민중 사이에서 비판, 저항, 야합, 협조, 도피 등 출렁이는 모습을 보여 왔다.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요동치고 있다.

이제는 조급함과 혼잡함과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나 더 높은 가치에서 현실을 제대로 살피며 그들이 사용하는 말과 글에서부터 질서와 정의를 찾아야 할 때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궤변과 억지 논리는 청소년들에게 결정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 선택하고 사용하는 말과 글에서 비논리적, 불합리한, 과장된 표현이 정제되기를 소망한다.

BC 2333년, 단군 조선이 건국될 당시, 그 시대에는 이미 지구상 곳곳에 문명의 꽃이 피었다.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중국과 인도.. 지구촌 곳곳에서의 고대 역사는 각종 문헌이나 유물 유적을 통해 의심할 수 없는 실존 역사임이 증명되었고 세계인들이 인정한다.

그 지역보다 훨씬 생명력 있는 자연환경과 생태 조건을 갖춘 한반도 주변 지역에는 인간의 문명이 죽어 있었을 리가 없다. 다만 주변 강대국의 침략 전쟁으로 영토가 축소되어 유물과 유적을 이 땅에 없고, 수많은 역사 기록물이 소실되었을 뿐이다.

현존하는 유물 유적을 통해서도 단군 조선의 역사는 실존사임이 분명함에도 아직도 신화일 뿐이라고 비하하는 궤변론자들이 우리 사회에 지도적 위치에 있다면, 일반인들의 역사관과 국가관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검인정 교과서의 좌편향성이 문제되어, 이를 해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의견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좌우 양극단을 배제한 학문적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는 소통과 화합의 절차가 필요하다. 어느 한쪽의 주장을 배제하기 위해 정반대의 의견만 강조하면 헤겔식의 정반합의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하나의 궤변 집단을 막기 위해 또 하나의 궤변 집단이 동원된 셈이다.

집단의 구성원들 가운데 극좌 극우의 성향을 지닌 소수파 개인과 다수의 합리적인 중용 집단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 또는 지도자의 이름으로 극소수파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이를 정책으로 수립 시행한다면 역사 발전에 역행할 뿐 아니라 정반합의 불행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행하게도 정부 조직명칭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문적 검토 없이 권위주의적 발상으로 뜯어고치는 궤변을 보게 된다.

이러한 지도층들의 궤변논쟁은 정부 조직명이나 많은 사회적 용어에서도 나타난다. ‘교육부’, ‘문무성’, ‘문교부’라는 조직명이 문제되는 것이 아님에도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교육인적자원부’로, 과학기술이 교육에 중요하다고 해 ‘교육과학기술부’로 바꾸고 다시 원위치하였다.

학교에서는 ‘교장’을 보필하는 부교장을 ‘교감’이라 하면서도, 교육 행정 광역단체장은 ‘교육감’, 기초단체장을 ‘교육장’으로 해 거꾸로 표현, 국민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지역교육청’을 ‘지역교육지원청’으로 바꾸었지만 통제 관리 중심의 장학 행정이 지원봉사 중심의 서비스 행정으로 변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공식적으로는 지원 행정이나 비선적으로 여전히 통제 행정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초-중-고-대 학교급을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라 해, 일관성이 없어 너무 헷갈린다. 내무행정 중앙 부서를 ‘내무부’, ‘안정행정부’, ‘행정안전부’, ‘행정자치부’로 자꾸 바뀌었다가 또다시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다. 안정이라는 단어의 위치에 의해 안전의 실효성이 달라지지 않을 것은 뻔한 데도 말이다. 권력자의 의지에 동조 편승해버리는 지식인들이 많다.

‘자유학기제’라 하면 일반인들은 기존의 1,2학기제도에 변화를 주는 어떤 형태일 것으로 생각되나, 중학교 과정 전체 6학기 중 1/6학기에는 지필고사를 시행하지 않고 체험학습을 주로 하는 학기를 말한다고 하니, 잘 이해되지 않는다. ‘경북교원연수원’이 ‘경북교육연수원’으로 바뀌었는데, 최근에 또 ‘경상북도교육청연수원’으로 바뀌었다. 우리 사회의 사회과학자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새 용어 생산 능력이 이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가. 전문가의 말을 듣지 않는 권력 편승 아마추어들의 횡포 탓이라 본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국가의 안보와 관련한 해군기지를 ‘해적 기지’라고 부르는 것은 막말의 수준을 넘는 범죄 수준이다. 내가 투표했던 지도자가 추진하는 정책이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반할 때는 오히려 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에 맞다. 불합리한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배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국민을 배신한 것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동조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말을 과격하게 또는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잘 듣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국가 사회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건강한 가치관을 해치는 급진적 표현은 자제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분별력, 논리적 일관성, 용어의 본질적 개념을 고려하지 않은 용어의 선택은 궤변이고, 막말이다. 자라나는 청소년의 건전한 사고력 함양에 매우 비교육적이며 위험한 발상이다. 바른 용어를 선택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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