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선 수필가

아내, 엄마, 며느리, 결혼한 딸을 통틀어 주부라 한다. 주부가 곧 아줌마다. 아줌마이면서 아줌마라는 소리를 싫어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새댁을 보고서 아줌마라 하면 당연히 낯설어 거부감이 들기 마련일 테지만, 결혼 경력 이십여 년이 다가와도, 그보다 훌쩍 넘기고도 싫어라 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모르겠다.

아줌마라는 낱말을 좋아한다. 그 안에 든 무궁무진한 힘과 연륜이 돋보이니까. 천장에 붙은 전구 갈기는 물론, 목이 꺾어져라 쳐다보며 갈아야 하는 커튼 봉에 낀 커튼 갈기, 도저히 어찌 옮겼을지 알 수 없는 피아노나 장롱 옮기기 등 스포츠 경기하듯 모아놓고 대결이라도 해 본다면 정말 가관을 넘어 경이롭다 소리가 나올 터다.

요즘 젊은이들이 줄여 말하기를 좋아하다가 드디어는 말 대신 동작으로 보여주는 '엄지 척'을 많이 쓴다. 군소리 말라는 듯, 시답잖은 것은 저리 가라는 듯 네 손가락은 눕혀버리고 엄지손가락에만 힘을 실어 세우는 것이다.

아줌마의 손은 열 개가 넘는다, 눈도, 귀도 여러 개다. 이 말대로라면 기형이다, 기형적일 수밖에 없다. 기형이 아니라면 어찌 상식선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다 해낸단 말인가. 아줌마의 역할은 크고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 언제나 그 자리는 두루 아우르고 보듬어 챙기는 봉사의 자리에 있다. 가족의 화합과 사회의 융화 속에 그들의 비중이 얼마나 크던가.

언제 적부터인지 무엇으로부터인지 귀한 대접을 해 주어야 할 아줌마를 예사로 대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그 행간에는 몸을 사리지 않는 배려와 친절이 당연함으로 젖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디 있던가.

흔히 생각하듯 아줌마가 있는 자리는 언제나 질펀한 수다 판만 있는 게 아니다. 현대의 아줌마라면 열정 근면 검소 성실만 아는 게 아니라 '낄끼빠빠'니 '내로남불' 정도는 필수 매너다. 낄 데 안 낄 데를 알고 함부로 남의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정도는 다 아는, 눈치 코치 재치 삼박자를 다 갖춘 재간꾼들이다. 무지막지 힘만 좋은 무리로 알면 오산이란 말이다.

한 때 '아줌마'의 뜻은 '아기를 넣어 다니는 주머니'란 말이 돌 때가 있었다. 언뜻 듣기에 너무 처참한 설명이 아닌가도 싶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 어마어마한 일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아무리 자동화로 움직이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 한들 아줌마라야만 할 수 있는 기능이라면 더욱 어깨가 으쓱할 만 한 일이다. 아기를 낳는 일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진정한 으뜸의 가치이니까.

더불어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시, 입고 다닌 긴 치마를 잘라 보자기를 만들어 돌을 이고 날라 행주대첩의 승리에 기여하고 지금까지도 행주치마의 상징이 된 아줌마가 아니던가. 작금에는 귀족노조니 뭐니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산업 경기 활발하여 공단 연기 높이 치솟고 요란한 기계 소리와 비례해 거대 기업이 살찌는 소리를 내며 세계로 내달릴 때, 산업 일꾼들이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쳐달라고 목청 높인 긴긴 싸움을 기억한다면…

그야말로 당시의 귀족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들 역할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경찰과 짬짜미라도 한 듯 밖에서는 진을 치는 경찰이, 안에서는 직장 상사들이, 언론엔 무조건 약자인 노조 탓만 하며 죄인 취급으로 몰아붙일 때도 한 대 잠을 자는 근로자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해 주먹밥과 물병을 넘겨다 주던 이도 아줌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대가 어렵다고들 난리다. 와중에 요즘은 결혼을 안 하려 해서 아줌마가 줄고 있다. 오늘날 아줌마가 할머니가 되고 뒤따를 아줌마가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되련만 아줌마의 모습을 너무 맹렬히 보여줘서일까, 엄마의 삶을 닮지 않으려는 듯 결혼을 기피하니 안타깝다. 아줌마가 '엄지 척'이 되기까지 그 자식들을 키우느라 무쇠처럼 단단해졌는데 정작 결혼 적령기에 든 자식들은 지금보다 더 무거워질 어깨를 감당 못 할까 봐 몸을 사리는 현실이라 종용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에 아줌마가 있어 건재하다. 한 곳만 파고든 전문지식인들과 한 직장에만 파묻혀 산 직장인들보다, 사팔뜨기처럼 결혼에 결부된 모든 상황을 챙기며 직장과 가정의 가교에서 곁눈질해가며 산 연륜을 높이 쳐야 한다.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아기 젖 물리고, 텔레비전 연속극에 빠져서도 신문에 눈 박은 결과로 다재다능, '엄지 척'이 되었다.

내 이웃에는 '엄지 척'을 세울만한 힘찬 아줌마들이 많다, 열댓 명 모여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옛날에 내가 결혼할 때처럼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그런 잔치 한판 벌이고 싶다. 큰일을 끝낸 후, 힘들었던 노동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모양새 나는 뒤풀이로 노래방에서 한턱 그득히 내고도 싶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아줌마들을 향해 '엄지 척!'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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