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기생충은 사람이나 생물의 몸 안이나 몸 밖에서 기생하며 영양분을 빨아 먹으며 생활하는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기생충이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여 사는 사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이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영화를 보고도 생각의 파편들이 정리 되지 않는 채, 필자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아마도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차별되는 느낌은 웃음 뒤에 더 큰 아픔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프랑스에서 열린 제72회 칸영화제 폐막막식에서 황금종려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한 작품이다. 더욱이 올해 경쟁부분 초청작은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들의 작품들이 5편이나 포진되어 있을 만큼 치열한 경합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금의 시대상을 영화라는 스크린에 담았다. 영화의 형식은 웃음이 담긴 코미디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시스템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박 사장(이선균)집 과외 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따라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영화 속에는 많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첫째, 포스터가 주는 의미

기생충의 포스터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문구는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시대는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해지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장 가난한 나라와 선진국 간의 소득 격차가 점점 심하게 벌어지고 있다. 포스터의 문구는 이런 빈부격차와 계급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가능하다는 어떤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포스터를 보면 사람들의 눈이 하나같이 가려져있다. 등장인물의 표정이 뭔가 닫혀있고 섬뜩하다. 마치 범죄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자이크처럼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그들은 왜 웃음이 없을까? 그들은 왜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왜 얼굴을 숨기고 있을까? 이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사회의 이기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가면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반지하의 가족들 그리고 터널

기택(송강호 역)은 집안에서 동네 길거리가 내다보이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거기는 와이파이도 잘 안 터지는 곳이다. 가끔 지나가는 취객들이 술에 취해 소변을 보는 사람들도 보인다. 또한 그곳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지하 습기에 곰팡이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때론 지하철을 타면 나는 냄새일수가 있고 오래 말린 무말랭이 냄새 같은 역겨운 냄새 일 수가 있다. 더구나 비가 많이 오면 집안에 물이 가득 차는 곳이다.
기택의 가족에게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 일종의 무계획이 계획이다. 그들에게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 눈앞에서는 벌어지는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뿐이다. 그러면서 양심과 도덕성은 사라지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자리를 찾는다. 이러한 모습은 기생충의 진화 과정과 비슷하다.
영화의 전반부는 기택이라는 백수가족이 박 사장 집으로 위장 취업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다. 그러나 영화 중반부에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고 박 사장의 집에 초인종이 크게 울리면서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기생충은 반전을 노린다. 기택(송강호 역)의 가족이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박 사장(이선균 역) 집에서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고 되고 젖은 몸과 맨발로 지하 터널을 지나가는 장면은 또 하나의 기생충의 모습이다.

셋째, 언덕 위의 멋진 집

‘기생충’의 영화는 수평선이 아니라 어쩌면 수직을 지향하고 있다. 기택의 집도 반지하 수직이고 박 사장(이선균)의 집도 지하계단이 딸린 수직을 향하고 있다. 박 사장의 집은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집이다. 그 곳은 햇빛도 잘 들어온다. 마당에는 푸르고 넓은 잔디밭이 있다. 그 위에는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빗물이 스미지 않는 미제 인디언텐트가 있다. 박사장은 아무런 불만이 없는 완벽한 곳에 사는 글로벌 IT기업의 사장이다. 박 사장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돈만 있으면 운전기사도, 가정부도, 심지어는 과외선생도 마음껏 구할 수 있다.
영화 ‘설국 열차’에서 하층구조와 상층구조의 대비가 꼬리 칸과 머리 칸으로 신분이 나누어 졌다면 ‘기생충’은 이 시대의 부조리한 빈부격차 소위 계급사회를 고발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반지하로 대변되는 하층구조’와 ‘넓은 정원과 웅장한 집으로 대변되는 상층구조’가 계단의 오르내림이라는 시각적인 이동을 통해 명확히 구분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하에 사는 사람과 지상에 사는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은 힘든 일인가? 가까이에서 서로의 냄새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냄새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꿈꿔본다. 우리들이 조금만 눈을 뜨고 마음을 열수 있다면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자연에서 보여주는 기생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인간군상이 보여주는 기생충은 왜 그렇게 추하게 보이는 걸까? 일부의 사람만이 부를 독점하는 세상,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살아 남기위해 기생하는 처지이면서도 약자와 빈자의 기회와 먹이를 빼앗는 비열하고 비정한 기생충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아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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