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열 사회2부 부장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여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 불러본 군가. 사실 뭣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진짜사나이라는 군가였다. 그 당시 군가를 부르면서도 생겨났던 약간의 궁금증,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란 구절의 참된 의미를 강원도 화천에서 시작된 군 생활을 통해 명확하게 깨닫게 됐다.

나의 군 복무는 동부전선 GOP 철책에서 시작해 철책에서 마무리됐다. 이등병 시절 처음 맞이한 철책은 두려움과 고난의 대상이었지만 이후 병장 계급장을 달고 다시 들어간 철책은 나라와 민족은 물론 나 스스로와 이웃인 사회·주변을 약간은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시간이었다.

자유로울 수 없는 영내(領內)에서의 삶과 일일이 보고하지 않고 다닐 수 없는 통제된 조직 문화, 정해진 틀 속에서 이뤄지는 하루일과 등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규율 너머 작은 일탈까지 즐길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다.

일몰에 시작해 새벽녘에 끝나는 경계 근무 후 홀로 북녘 땅을 향해 외치던 북한 최고 존엄에 욕설(?)은 부대 선임으로 누릴 수 있는 작은 여유로움이었다. 내용인즉슨 ‘너로 인해 내가 이 적막한 산악에서 황금 같은 청춘을 허비하고, 개고생까지 하고 있다’란 주제다.

이와 동시에 정리되는 생각은 내가(우리가) 이렇듯 고생하므로 고향의 부모 형제는 물론 남한 사회가 보호되고 있으며, 나 또한 먼저 군에 입대해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신 이들로 인해 보호받아 왔음도 깨닫게 됐다.

지금껏 모두가 국가라는 조직을 위해 수고하고 고생해 왔기에 풍요로운 전체 사회가 유지됐고 이전보다 더 발전해 올 수 있었다. 선순환의 굴레에서 나 또한 작은 한 부분을 맡아 책임을 다했다는 것에 조금이나마 가슴 뿌듯해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어렵게 지켜 나온 우리 대한민국이 국가 존립과 관련된 문제로 걱정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취업과 실업, 국내 경기와 국제경제 상황 등 모든 경제 문제는 물론 국방·안보 관련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군복무기간 단축과 관련된 우려에 대해, 정부는 무기와 장비 첨단화와 전문화된 강군을 육성해 대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군 상황을 보면 믿음보단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만 가고 있다.

사라진 한미연합훈련과 현저히 줄어든 한국군 자체훈련, 사고 발생으로 인한 진급 불이익과 징계 우려로 약화돼 가고만 있는 강군 육성정책, 금지된 휴전선 상공 정찰, 폭파된 GP와 제거된 지뢰·대전차 방호벽·해안 철책, 병사들의 근무시간 외 외출, 휴대전화 허용, 외출·외박 시 위수지역(衛戍地域) 폐지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최근 7군단장을 보직해임 시키라는 하극상(下剋上)의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부대 훈련이 힘들다는 것이 주요 사유다. 대대병력이 완전군장해서 훈련해야 함에도 병력의 절반 정도만이 참여하고, 참여자 다수가 군장을 메지 않았으며, 일부 군장을 멘 병사들도 대부분이 군 장비를 빼고 빈 음료수병을 채워 훈련에 임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장병들의 마음속에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라는 군가를 부를 때 마음의 부담이 없는지 궁금하다. 아니 이런 군가가 지금은 불리지도 않는 것은 아닌지…

물질적인 것에 있어서는 새로운 것이 좋고 신제품이 좋지만,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의식과 정신만큼은 보수적이고 작은 빈틈이라도 생겨나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으면 좋겠다. 국가의 존립과 경제 발전은 물론, 사랑하는 ‘부모 형제의 단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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