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의 가을풍경이 아름답다./ 안동시 제공
“왜 다시 안동인가?”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접한다. 21세기가 열리고 20년이 지난 시점에 말이다. 국내의 현상만이 아니다. 영국 왕실에서는 20년 전 엘리자베스 여왕이 안동을 방문한데 이어 지난달 여왕의 아들 앤드루왕자가 안동을 다녀갔고,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안동을 찾은바 있다.
“왜 다시 안동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전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하나의 학문분야가 태동했다. ‘안동학’이 곧 이 질문의 답이고, 안동학의 규정은 이것으로 매듭될 것이다. 안동학은 서울학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등장한 ‘지역학’으로서 지금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안동학’의 태동

역사가 웅숭깊은 고장일수록 다양하고도 특색 있는 전통문화, 고유한 정체성으로 역사적 의의를 갖게 된다. 안동의 역사는 비교적 최근부터 사용되고 있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별칭만 살펴봐도 그 유구한 흐름을 짐작케 한다.
안동은 경북 내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도시며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수로와 저수시설 등이 발견된 저전리 유적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관개시설로 손꼽히기도 한다. 봉정사의 극락전 역시 국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유명하다.
이 같은 유형이 흔적과 유산만이 다가 아니다. 안동은 오래 전부터 유교와 불교, 민속문화가 고르게 뒤섞이며 발전해온 독특한 지역이기도 하다. 근대에 들어서는 의병항쟁과 독립운동이 국내에서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늘 등장한다.

안동시와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001년부터 지역학으로서 안동학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사업을 시작했다. 1993년 서울학 연구가 시작된 뒤 국내 두 번째 지역학으로서의 출발이었다.
인구 16만 명에 불과한 안동을 연구하는 안동학이 부산학(2003년 시작), 인천학(2002년 시작), 대전학(2003년 시작) 등 대도시를 연구하는 지역학보다 일찍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뚜렷하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유무형 문화유산들과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정신문화 자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동수 안동문화원장은 "까마득한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역학 성립의 중요한 요소인 ‘문화적 특수성’과 ‘보편성’을 모두 갖춘 안동문화는 지역학 연구의 표본으로서 그 가치가 독보적이며 국내 지역학 연구의 좋은 선례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리적 특징과 유불민속문화의 동반 발달

안동의 어떤 면이 지역학문으로서 ‘안동학’을 가능하게 하는지 살펴보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안동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리와 문화, 역사와 배경, 문화유산 등을 망라해야 할 것이다.
안동은 지리적으로 소백산맥의 남쪽과 태백산맥의 동쪽이다. 낙동강계의 최상류에 속하며 반변천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낙동강의 출발점을 이룬다.
문화적으로 안동은 흔히 유교문화의 본향으로 불린다. 특히 조선 성리학의 중심지로서 명성이 높았던 안동 지역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호계서원 등을 비롯한 많은 수의 서원이 건립되고 남아있다. 퇴계 이황을 비롯한 수많은 명현거유를 배출했고 이에 따라 서원의 건립도 이어져 지역사회의 교육을 담당해 왔다.
수많은 서원들은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따라 훼철됐지만 이후 유림의 뜻으로 복원된 사례가 많다. 무엇보다 이 서원들과 학맥을 중심으로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의병투쟁이 활발히 펼쳐졌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안동문화의 진짜 특징은 유교문화 일변도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안동은 성주풀이의 첫대목 “성주의 본향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에서 보이듯 한국 무속문화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많은 동제와 무가들이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와 함께 경주와 비교될만큼의 불교 중심지로서 국내 최고 목조건축물을 보유한 봉정사는 물론 많은 전탑이 잘 보존돼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유교, 불교, 민속문화가 고루 발달했고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인 셈이다.

-통합성을 보여주는 문화적 다양성
안동은 역사적으로 고대에는 북쪽의 고구려와 남쪽의 신라가 만나는 접경 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남북 문화의 특징이 뒤섞일 수밖에 없어 문화적인 통합성을 띄게 된다. 고려왕조의 건국 당시에 태조 왕건을 도운 안동의 삼태사는 지금도 지역의 대표적인 역사콘텐츠로 꼽히며 각 문중의 추앙을 받고 있다. 조선왕조의 건국 당시에도 역시 안동은 주도세력을 배출했다.

안동은 경주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고건축분야에서는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영주) 등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이 집중 분포돼 있다.
조상의 유산을 지키고자 하는 전통수호의식이 강한 특성에 따라 조선전기 이후 근대까지의 수많은 전통건축들이 후손들에 의해 옛 모습을 그대로 남아있다. 이 고건축물들은 양반들의 주택 뿐 아니라 서민 주택까지 포함해 보존돼 있어 한국 고건축 연구의 중심지로 꼽히고 있다.

이중 안동을 대표하는 반가의 주택들은 지역에 여전히 남아있는 문중조직의 중심을 이루면서 아직도 안동은 종친회 모임이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으로 꼽힌다. 종가를 중심으로 끈끈히 뭉쳐져 있는 크고 작은 집성촌들은 건축사적인 측면 외에 마을사 연구에서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는데 한국사 연구의 새로운 경향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등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안동의 집성촌은 자료의 보고 자체다.
놀이문화 역시 남다름을 자랑한다. 하회별신굿과 같은 한국을 상징하는 민속문화들이 원형대로 남아 한국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이 같은 안동의 유무형 문화유산의 가치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아 하회마을과 봉정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는 유교책판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돼 있다.

-‘안동학’의 본격적 등장

안동이 가진 이 같은 문화적 특징과 자산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진 많은 학자들에게 일찌감치 주목받아 오래전부터 연구의 대상이자 자료의 보고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다가 안동학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1년이다. 이 해 4월 한국국학진흥원과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 미국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 등 3개 기관은 안동학의 정립과 국제화를 위한 공동연구 협정을 맺었다. 본격적인 안동학의 태동이었다.
협정 이후 5월 안동에서 워크샵을 연 데 이어 11월에는 하와이에서 제1차 안동학 워크샵이 열렸다. 워크샵에서 발표된 연구주제들은 안동문화관광의 정책 방안 연구, 안동의 가문과 혈통, 안동의 역사 등 본격적으로 전문적인 안동의 면면을 다뤘다.
공동연구의 목적은 안동학 연구를 세계화하고 공동작업을 통해 나오는 연구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 안동학연구를 세계학계에 소개하자는 시도였다. 지역학이 단순 연구에 그치지 않고 지역학 자체가 지역발전 및 주민들의 나아진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임세권 전 안동대 교수는 “농촌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로 앞으로 전통마을들을 포함한 지역이 존속할지 장담할 수 없다”며 “안동학은 지역의 미래에 전통마을과 역사가 어떻게 존속할지를 제시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안동학은 안동학만이 아니다. 도농격차를 줄이고, 서울과 지방의 차이와 차별을 줄여서 우리의 터전이 존속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지역학이 활발히 이어지고 그 순기능이 확대재생산 돼야 할 이유가 갈수록 분명해지는 시대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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