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소장 (한국 unity-liberty 연구소)

한때 한국의 부유층들은 호주와 캐나다 해외여행에서 선물용 벌꿀을 많이 사왔다. 이러한 한국인 관광객을 호주 현지에서 ‘Honey boy!’라 불렀다. 호주산 벌꿀의 가격이 한국산의 1/3 정도여서 경쟁적으로 수입해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호주산 꿀을 수입하는 한국 관광객들은 많지 않다. 호주산 꿀이 한국산에 비해 그 향이 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호주산 꿀의 향이 한국의 그것보다 진하지 못할까.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한국의 풍토는 작지만 오히려 더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열대와 같은 한여름과 한대와 같은 한겨울, 양극단의 풍토가 공존하고 있다. 한여름과 한겨울, 그 사이에 봄과 가을이라는 완충 기간이 삽입되어 있을 뿐이다. 열대성 동·식물들이 겪게 되는 한겨울은 그들에겐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고난의 기간이다.

한대성 동·식물이 겪게 되는 한여름은 강인한 생존 본능으로 견뎌내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다. 견디기 힘든 그 고난을 극복함으로써 보다 생명력 있는 존재로 살아남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열대와 같은 강한 무더위와 한대와 같은 맹추위가 공존하고 있는 땅이다. 강한 더위와 강한 추위의 양극단에서 생존하려면 더 강한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면적이 비슷한 영국의 야생 식물의 종류가 500여 종인데 비해 우리나라 야생 식물은 공식 통계로 약 5천여 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같은 면적의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종류의 생명이 존재한다고 한다.

많은 시련을 잘 극복해온 생명체로부터 나오는 토종꿀이 광활하고 평온한 토양에서 나오는 외국산에 비해 향이 진하듯이 한국산 생명체의 그것이 외국산보다 생명력과 지구력이 강하다. 이러한 토양에서 살아온 한국인의 정신력과 체력과 생명력 또한 강인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미꾸라지 양어장에 맑고 깨끗한 물과 충분한 먹이를 주었는데도 비실거렸지만, 그 양어장에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여러 마리의 가물치를 함께 살게 하니, 오히려 훨씬 더 싱싱하고 탄력적인 미꾸라지로 생존하고 결국 명품 추어탕의 재료가 된다는 실험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제 토종 농·축산물이 외국의 그것에 비해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점을 알고 비싼 가격 지불을 감수한다.

이와 같은 생명의 진리를 ‘고난의 축복’이라 부른다. 가물치 없는 안전한 곳에서의 미꾸라지보다 가물치와 함께 생존해 온 미꾸라지가 훨씬 생명력이 있듯이, 한겨울과 한여름을 극복한 꽃과 꿀의 향이 진하듯이, 고난 없이 평온한 삶의 연속은 천국이 아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잘 견디고 이겨 나가는 것이 진정한 ‘고난의 승리’인 것이다.

마땅히 겪어야 할 수고와 고난, 그것은 괴로움이 아니라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 뒤편에 숨어 있는 행복과 기쁨과 승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청소년 시절, 곧 성인의 세상에 나가기 직전의 시절, 마땅히 거쳐야 할 학업의 수고와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서 잘 극복했을 때, 그 인생은 생명력 있는, 활력 넘치는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노동의 수고 없는 놀이와 휴식은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 엔진 없는 자동차는 내리막길은 잘 내려갈 수 있지만, 인생의 오르막길에 직면하게 될 때는 동력이 없어서 더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인생의 오르막길에 발생되는 동력은 ‘고난의 승리’를 체험하고 그 진리를 깨우치며 준비하는 자에게만 부여되는 신의 축복이다.

모든 국민은 토종꿀의 향처럼 진하고 톡 쏘는 인생의 맛을 느끼고 싶어 한다. 세금을 거두어 나누어주는 일자리는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자리가 아니다. 자녀들의 학교 점심값을 국가에서 지불해주는 것을 무조건 환영할만한 일이 아니다. 보편적인 복지 수준을 확대하면 할수록 경제 사회의 활력은 오히려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최저 임금에서 ‘최저’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게으른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은 결국 자유시장경제의 활력을 잃게 만드는 일이다.

노동의 수고를 덜어주고 휴식시간을 늘려주며 노동생산성을 무시하고 임금을 올려 주면 행복할 것이라는 사탕발림 정책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의 작은 기쁨을 위해 미래의 큰 행복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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