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고와 오징어 숯불구이

10대 시절에는 무조건 새것이 좋았다. 새 차, 새 옷, 새 친구. 20대에 걸쳐 있는 요즘은 손 때가 묻어 익숙한 것이 좋다. 소꿉친구, 오랜 된 단골가게, 전통시장 등.
원조 산호아나고곰장어는 지난 2002년 개업해 17년 동안 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어 마음의 고향 같은 안정감을 준다. 어머니의 푸근함이 서려있는 이곳은 익숙하지만 질리지 않는, 언제라도 반겨줄 것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 675-18번지에 위치한 원조 산호아나고곰장어(대표 최미화)는 더운 여름 든든한 한 끼 식사는 물론, 술안주로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비교적 손님이 적은 평일 오후에 식당을 찾았지만 단골손님으로 북적였다.

얼른 자리를 잡고 가장 기본 메뉴인 곰장어 숯불과 아나고(붕장어가 공식 표기) 몸통을 맛보기로 한다.
양파절임, 파전, 번데기와 각종 야채가 상에 오르고 양념된 메인메뉴가 나왔다.
눈앞에 마주한 외형은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였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숯불에 올려보기로 한다.
석쇠 위에 올려진 곰장어와 아나고는 강원도 참숯 향이 배어 후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침 삼키는 소리가 귓등에 울려 퍼진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곰장어를 특제 소스에 콕 찍어서 먹어본다. 몇 분 전의 우려는 기우였다. 곰장어와 아나고의 못생긴 모습에 계속해서 편견을 가졌다면 이렇게 맛있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살 뻔했다. 곰장어를 씹었을 때 부드러움과 푹신함이 마치 카스텔라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의 감촉과 비슷했다. 통통한 살점은 씹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기름기가 적어 담백했다.

곰장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채 이번엔 아나고를 먹어봤다. 아나고는 곰장어와 대조적인 식감이 눈에 띈다. 아나고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데 이 순간만은 전지현 김태희가 부럽지 않다. 고소하고 알맞게 뜨거운 아나고가 몸속을 통과하는 순간 손과 발에 힘이 불끈 솟는 것 같았다.

집게를 든 손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눈은 석쇠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곰장어와 아나고는 많이 먹으면 물릴 수 있는데 특제 소스가 이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적당히 매운맛의 빨간 소스는 느끼함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취재를 빙자해 다른 메뉴를 더 맛보기로 한다.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는 오징어 숯불과 주꾸미, 닭발을 추가했다. 추가한 메뉴가 테이블에 오르고 다시금 집게를 든 오른손이 바빠진다.

사실 오징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오징어 숯불은 전혀 기대를 안 했다. 한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자른 오징어를 마요네즈 소스에 쿡 찍어 먹어본다. 구운 오징어 특유의 질기고 딱딱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살이 꽉 차 쫀득하고 말캉한 식감이 굉장히 좋았다. 오징어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이 식감은 사라지지 않아 입안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징어를 찍어 먹는 마요네즈 소스에도 비밀이 있었다. 일반적인 마요네즈가 아니라 다진 마늘을 비롯해 비법 양념이 첨가된 소스는 씹을 때마다 톡 하고 씹히는 마늘이 알싸한 향을 내뿜는다.

주꾸미와 닭발도 굽기 시작했다. 사실 닭발을 먹을 때면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주먹밥이 생각난다. 하지만 원조 산호 아나고 곰장어 집에서는 주먹밥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머릿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닭발에 은은하게 참숯 향이 배여 있어 저렴하게 배달해서 먹는 닭발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더 이상 위장에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맛만 보자는 심정으로 주꾸미를 먹어본다. 주꾸미를 늦게 먹은 게 아쉬울 따름이다. 더 먹고 싶은데 배가 차서 많이 못 먹은 주꾸미는 지금까지 후회로 남는다.

최미화 대표는 “이곳에서 장사를 한 지 20여 년이 다 돼 가는데 손님들이 항상 맛있게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라며 “간판이 내려가는 날까지 한결같은 맛으로 보답하겠다”라고 말했다.

기력 떨어지는 여름, 곰장어와 아나고를 먹으면서 원기충전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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