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경북예술마당 솔 대표·전 포항 대동중 교사

2000년 3월부터 사립학교에도 학교운영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해 나는 10년 동안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 같은 재단 중학교로 강제 전보됐다. 재단에 근무하는 100여 명 교사 중에 나는 유일한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한 때 교육 현장에도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우리 재단 학교 교사들도 교사협의회를 조직해 나름 활발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나 1989년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대부분 교사협의회 활동가들은 투항하고 몇 사람은 해직당했다. 내가 근무를 시작했던 1990년 9월엔 패배와 좌절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시기였다. 나는 그걸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성급한 마음으로 전술적 오류를 범했다. 십 년 가까이 부대끼면서 전교조에 동참하려는 동지를 얻지 못하고 학교를 옮겨야 했다.

학교 관리자들은 내가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는 걸 막았다. 사실 사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기구였다. 심의가 아닌 자문에 그쳤고, 교사위원 선출은 교사들이 뽑은 후보를 3배수 추천하면 재단에서 그 중 마음에 드는 인물을 선택한다. 말도 안 되는 사립학교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비민주적인 규정으로 인한 교원위원 선출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나는 교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내가 빠진 상태에서 교원위원 선출 투표가 이루어졌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무려 과반수 교사들이 내 이름을 적었다. 일종의 반란이었다. 관리자들은 비상이 걸렸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필체 확인을 통해 누가 내 이름을 적었는지 파악했다고 한다. 라포르(rapport,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낸 일방적 지지는 이후 활동에 방해 요인이 되었다. 어차피 뽑아 봐야 안 되는데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는가!

아무리 과반수가 나를 뽑았다 하더라도 '3배수 추천'이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2명 뽑는데 6명을 추천하니 6위는 두 표 얻은 사람이다. 재단에서는 나와 3위에 오른 동조자를 제외하고 2위, 4위를 초대 학교운영위원회 교원위원으로 뽑았다. 박근혜 정권시, 국립대학인 경북대학교 총장 선출에서도 교수들이 1위로 뽑은 김사열 교수 대신 2위 순위자를 총장으로 임명한 것과 같은 사례다.

이후 2년마다 새로 교원위원을 뽑을 시기가 되면 학교 측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내가 출마하지 않으면 교원위원은 무투표 당선이고, 내가 출마하면 투표를 한다. 어떤 관리자는 내게 회유하거나 출마 포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결국 나는 퇴임하기까지 교원위원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토록 내가 들어오는 걸 막은 학교운영위원회는 최소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교장은 당연직, 허수아비 교원위원 2명, 학교측에 협조하는 학부모위원 4명, 이들 7명이 모여서 학교측 정책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두 명의 지역위원을 충당한다. 사립재단 전횡을 철저히 보장하는 안전 장치로 두겹 세겹 감싼다.
이런 사립학교에 국민 세금이 고스란히 들어간다. 사립학교 운영비 100%가 국비로 충당되는데, 운영은 이렇게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이다. 재단전입금을 내는 사립학교 재단은 별로 없다.

사립학교법이 민주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앞날은 어둡다. 문재인 정권에서 과연 이 악법이 바뀔 수 있을까? 전교조를 무시하고 여전히 법외노조로 두는 걸 보면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는 이런 문제부터 풀어야 제대로 돌아간다. 아무리 착한 개인이나 독실한 종교인이라도 잘못된 제도 속에선 '평범한 악'을 피하지 못한다.

교원위원으론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학부모위원으로 학교운영위원회 활동은 했다. 아들 덕분에 서울화곡초등학교, 서울화일초등학교, 포항 흥해중학교, 포항해양과학고등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했다. 내가 참여한 어느 학교도 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거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학교운영위원회는 그리 어렵지 않게 돌아간다. 서울화일초등학교에서는 내가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 흥해중학교는 사립이기도 하다.

2019년 공공 부문 비정규직 파업을 지지한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공립학교 사립학교 사이 차별 없애기는 서로 통한다. 파업에도 참여 못하는 사립학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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