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상산고로 시작된 자사고 파장이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들의 재지정 평가 무더기 탈락으로 증폭되는 모양새다. 서울시교육청은 9일 평가 대상 13개 자사고 가운데 기준 점수에 미달한 경희·숭문고 등 8개교에 대해 지정취소 결정을 내렸다. 올해 평가받은 전국 자사고 24개교 가운데 46%인 11개교가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했다. 11개교는 서울 8곳과 전주 상산고, 부산 해운대고, 경기 안산 동산고로 모두 진보교육감이 버티고 있는 곳이다. 보수교육감이 있는 대구와 경북지역은 자사고 모두가 재지정 평가를 통과했다.

자사고는 다양한 교육수요를 담아내기 위해 이명박 정부 때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기존의 '자립형 사립고'보다 학교의 자율성을 더 확대했다. 교육과정, 교원인사, 학생 선발 등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10년 이후 전국에서 54개 학교가 자사고로 지정됐다.

당시에도 자사고가 고액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만큼 '귀족 학교'가 될 것이고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 진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몰리면서 고교 입시가 과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자사고를 둘러싼 논란은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의 연장선상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더 지원해서 키우기 위해 능력별·수준별 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시각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올해 자사고 재지정을 앞두고 전북교육청이 기준 점수를 교육부가 권고한 70점보다 높은 80점으로 설정하면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다른 시·도 자사고는 70점만 받아도 통과되지만, 상산고는 79.61점을 받고도 탈락했다. 기준 점수 설정은 각 지역 교육청 재량이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진보교육감들이 탈락을 염두에 두고 평가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만한 대목이다. 교육부는 각 지역 교육청과 협의해 형평성과 공정성 시비를 잠재울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사고 재지정에 따른 논쟁과 혼란은 5년마다 되풀이될 것이다. 내년에도 18개 학교가 평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혼란은 또다시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여론은 자사고 폐지에 좀 더 우호적이라며 여론조사 결과를 과시하고 있다. 자사고 수가 적어 여론 형성에 불리한 데다 자사고에 보내고 싶어했으나 탈락한 학부모가 자사고 존치를 바라겠는가. 자사고에 갈 실력이 안되는 학생들이 자사고 여론조사에 찬성표를 던지겠나. 이제 자사고 재지정 취소와 관련한 공은 교육부로 넘어간다. 교육부가 동의하면 해당 학교들은 내년 새학기 이전까지 일반고 전환 절차를 밟게 된다. 교육백년대계를 생각하는 교육부의 신중한 결정을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