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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밑설성제 수필가
   
햇살이 비껴 내리는 오후다. 아버지 혼자 신문을 보고 계신다. 나는 아버지 옆에 슬며시 앉는다. 떨어져 있던 식구들이 다 모이다 보면 아버지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여의치 않다.

아버지는 칠순이 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 새로운 우물을 판다는 것에 약간의 설렘도 있었지만 과연 이 우물에 물이 터질지는 아버지도 미심쩍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그래도 친정 나들이를 할 때마다 그림 도구들이 버젓하게 눈에 띄는 게 좋았다.

친정에 올 때마다 아버지의 그림이 궁금했다. 처음엔 날로 몰라보게 자라나는 아이처럼 실력도 쑥쑥 자라나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잠깐 성장을 멈춘 듯 고만고만해졌다.

그림은 마치 사춘기처럼 방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아버지에게 힘을 불어넣어 드리고 싶어 갖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열정을 잃은 아버지에게 생기가 돌 기회가 왔다. 동인들이 전시회를 열기로 했던 것이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 속에 아버지의 그림이 보였다. 바위를 끼고 흐르는 시냇물과 야산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그리고 단출한 기와집 주변으로 무성히 자란 풀들이 아버지의 그림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액자 앞에 아름드리 꽃다발을 놓고 사진도 찍었다. 아버지의 연세가 동인회에서 가장 많은 것을 처음 알았다. 전시 후에 아버지는 다시 힘을 얻으셨다. 그러나 그 후 똑같은 풍경이 화선지마다 늘어가는 게 이상했다.

신문을 뒤적거리던 아버지는 나한테 보여야 할 숙제가 있는 것처럼 돌돌 말린 화선지를 꺼내 오신다. 여러 장의 수묵화다. 그림이 어렵다며 이제는 더 이상 못 그리겠다고 하신다. 그림들은 전번에 왔을 때 살펴본 그대로다. 그림을 통 그리지 못하고 계셨던 게 분명하다. 붓이랑 이젤이 거실 한편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그림이 잘 되어 가는가 싶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으셨던가 보다.

 "내 그림은 아직 멀었다. 밑그림밖에 안 된다"
 "밑그림은 목탄으로 그린다면서요?"
 "목탄으로 그린 후 붓으로 덧그리기 하지"
 "이건 모두 붓으로 그린 거니까 밑이 아니잖아요"

밑그림에 불과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괜히 서글프다. 지천명을 넘어가는 내 삶이 여전히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을 아버지께 그만 들켜버릴 것 같아 얼른 말을 돌리고 싶다. 그러나 아버지의 밑은 바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밑바닥 같은 인생이 아니라 기초가 되는 밑을 말한다.

아버지는 그동안 그린 그림 몇 점을 표구해 놓으셨다.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표구된 그림들도 나름대로 충분한 밑그림을 가졌을 테다. 예술적으로 가치를 지니든 못 지니든 문제가 아니다. 아버지가 무명일지언정 마음의 잣대에 이르지 못하면 모두 밑그림으로 남아 떠돌 뿐이다.

밑이라는 접두어 뒤에 따라오는 말들이 많다. 밑바탕, 밑천, 밑반찬, 밑거름, 밑동…. '밑'은 모두 하나같이 받침대가 되는 기초를 의미한다. 밑이 없으면 '위'는 도무지 존재할 수 없는 뿌리와 같은 것이다. 세상에서 뛰어난 것들은 밑이라는 과정 없이 탄생할 수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수묵화뿐만 아니라 창작의 밑이 되는 필사를 즐겨 한다. 날마다 신문에 실린 시나 선현들의 잠언을 되새김질하듯 필사하며 마음을 씻는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만의 필체가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시집이라 부른다. 부엌에는 아버지가 뽑은 좋은 글귀가 필사되어 괘도에 걸려있다. 사랑이 부족하다고 여기는 어머니에게 이것이 남편 사랑의 밑임을 어머니도 아실 테다. 아버지가 필사 노트를 나에게 건네주신 것 또한 내 안에 삶과 문학의 밑을 쌓아보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성장기에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와 바라본 풍경이 나의 서정이 되었고, 아름다운 밑이 되었다. 명예에 욕심이 없었던 공무원의 정직하고 성실한 아버지의 삶이 각박한 세상에서도 내게 긍정의 눈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나는 아버지가 심어주신 이 밑을 잃어버릴까 봐 조심스럽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님과 스승님도 자식이나 제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밑천, 밑거름, 밑바탕 같은 근원이다. 밑을 토대로 재산을 불려가고 밭을 가꾸며 삶을 아름답게 이루어간다.

그림 그린 지 수 년이 된 아버지는 아직도 밑그림 위에 그림을 더해 가신다. '밑'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위'가 되어 있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그림을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탁자 위에 화선지를 곱게 펴서 올려다 놓는다.

무연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버지가 슬며시 따라 나오신다. 햇살이 길게 내려와 아버지의 어깨를 감싼다. 까만 실루엣으로 변한 아버지의 모습이 내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것은 내 안에 또 하나의 밑그림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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