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욱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수석부위원장

▲ 최병욱/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수석부위원장 겸 국토교통부노조 위원장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니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오. 설령 오해와 그릇된 마음으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아예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
이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애민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린 세종대왕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명언 중 하나다.

애민정신은 오늘날 국정을 이끄는 위정자뿐 아니라 공직에 몸 담고 있는 공무원에게도 필요하다. ‘살기 좋은 국토, 편리한 교통’을 만들기 위한 국토교통부의 사명처럼 공무원은 국민 생활을 더욱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임무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정자들은 칭찬에만 집중해서는 아니 된다. 쓴소리라 해도 경청해야 한다.

정부를 향한 쓴소리는 국민과 야당만이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현장에서 시행하고, 국민과 밀접하게 만나는 공무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공무원노조법)’이라는 올가미에 사로잡힌 탓이다.

공무원노조법은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 공무원의 노조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만든 법임에도, 업무총괄자를 비롯해 보안, 수사, 재정,인사, 기관장 비서 등의 업무를 행하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한했다. 특히 파업이나 태업 등 정부의 정상 운영을 방해하면 최대 5년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공무원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이로 인해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 노동자 중에 정작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는 대상자는 30여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단결권의 제한은 대한민국을 노동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이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이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지적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다행인 점은 늦었지만, 국제사회와의 약속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결권을 확대 보장을 요구해 온 공무원 노동운동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ILO 협약안이 통과돼도 현실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 체제에서는 단결권 제한이 풀려도 업무 총괄자로 분류되는 5급 이상 등은 마찬가지로 노조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노동운동은 이미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스웨덴의 세코(SEKO), 독일의 베르디(Verdi)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조직의 중심에는 공무원노동조합이 존재한다.

국내 양대 노총도 비슷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노동제도는 애민정신을 지향하는 공무원노동운동을 배제하다 못해 숨통마저 죄고 있다.

참다못한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은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과 장기간의 1인 시위를 전개하고, 노동절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30일에는 1천여명의 공무원이 청와대에 모여 연가 투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공무원노조법 개정을 속히 이행해 줄 것을 강력하게 호소한 바 있다. 무엇보다 공노총은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LO 100주년 기념 총회장에서 대한민국 공무원 노동제도의 열악함을 전세계에 알렸다.

공무원노조법 개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공노총과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과의 면담 자리에서 확인된 공통 견해다. 그렇기에 두 기관이 문제 해결을 위해 상설협의체를 구성해 단계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공무원노조법 하위법령을 손보는 것이 그 시작점이다.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되고, 백색국가 제외가 예고된 상황에서 공무원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대한민국 국민과 산업계를 대변해야 하는 사명감 또한 막중해 졌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 노동운동이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공무원노조법 개정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이유다. 보여주기식 행태가 아닌 공무원노동조합의 애민정신에 기반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정책의 성공과 국민 삶의 질 제고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공무원노조법 하위법령 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의 사용자는 봉급을 지급하는 주체인 국가, 정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사용자는 국민이다. 정부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날카로운 정부 견제와 비판이 가능한 공무원노동조합에 대한 실질적인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공무원노조법을 하루 빨리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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