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사무실에서 휴가를 가라고 난리다. 부하 직원에게 먼저 가라고 했더니 피크 타임 때 가겠다며 뒤로 미룬다. 아직 상반기 인사이동이 마무리되지 않아 어수선한데 사무실을 비우려니 찝찝할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다녀와야 부하직원들도 마음 놓고 갈 것 같다. 떠밀려서 팀장이 먼저 가게 되었다.

직장에서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강조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도 있다. 휴가 강조도 이런 흐름인 듯하다. 눈치를 보며 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직장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나는 아직 휴가에 익숙하지 않다. 매년 이맘때마다 휴가를 갔지만 특별히 즐긴 기억이 없다. 그냥 마지못해 다녀왔던 것 같다. 나를 위한 준비는 전혀 없는 상태로 갔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우리 또래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휴가를 갖기 어렵다. 물론 개인의 볼 일을 위한 시간을 얻는 것은 과거에 비해 많이 쉬워졌다. 주 5일 근무제가 되면서 금요일이나 월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3일 연달아 쉴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출근만 하지 않는 휴가라면 1년이나 기다려서 가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런 연가를 휴가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피서란 개념도 좀 어색하다. 더위를 피해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요즘은 에어컨 바람이 좋은 사무실이 훨씬 시원하다. 그렇다면 굳이 한여름에 휴가를 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다보니 휴가라고 해서 특별히 신이 나거나 설레이는 마음이 없다.

그렇지만 이왕 떠나게 되었는데 1년에 한 번뿐인 휴가를 어떻게 하면 의미있게 다녀올 수 있나?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떠나게 된 휴가를 앞두고 이것저것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탁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내키는 대로 가다가 보이는 것을 구경하고, 보이는 식당에서 먹고, 보이는 숙소에서 자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즐겼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럴 수 없다. 자신만의 휴가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가족과 같이 떠나야하기 때문에 가족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면 가족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휴가일부터 가족의 일정에 맞춰야 한다. 숙박문제라든가 비용계산 등 대책도 필요하다.

휴가의 즐거움도 계획을 세울 때나 신이 나지 막상 출발하면 교통체증에 바가지에 고생만 한다. 휴가 중에 노동도 해야 한다. 장거리운전을 하면서 경비를 따져가며 가족의 취향에 맞게 숙소나 식당을 정해야 하고 준비를 위한 장도 봐야 한다. 일하는 장소와 내용이 직장에서 가정으로, 사무실 일에서 집안 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쩌면 집에서 하는 일과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의 비중이 서로 비슷해진다는 의미에서 워라벨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명절마다 명절스트레스가 화두가 된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프다. 평상시에 겪지 않던 일들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휴가에도 그런 증세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다. 휴가 중에 겪는 일들도 만만치 않다. 복귀할 때는 후유증을 걱정해야 한다. 무엇인가 충전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폐물만 잔득 쌓고 온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뀐다. 이제 휴가 스트레스도 겪을 판이다.

그러나 휴가는 일하는 사람의 특권이다. 계속 놀던 사람에게 노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열심히 일하다가 휴가를 가야 의미가 있다. 이런 귀한 특권을 그냥 버릴 수는 없다. 즐기는 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생각하니 휴가 때 신나게 놀았던 기억은 5분전과 5분후를 생각하지 말라는 군대에서 유일하게 경험한 듯하다. 당시 휴가나 외출, 외박을 나가면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 지금 사회에서도 이렇게 신나는 포상휴가는 없을까? 비록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군대에서처럼 모든 것을 잊고 즐길 수는 없을까.

주위에서 휴가 중에 노는 것을 배우지 못한 나를 향해, 노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휴가를 떠나라고 한다. 놀아본 사람이 놀 수 있다는 것이다. 자주 가봐야 익숙해진다고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래도 떠나라.
열심히 일한 당신…아니 열심히 일해야 하는 당신. 떠나라! 빨리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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