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을 이어가며 새것을 더하다

▲ 단청작업하는 전연호 선생. 전연호 선생이 단청 작업을 하고 있다.
물질문명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 문화예술의 전승발전을 위해 우리 고유의 소중한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는 무형문화재와 그 전승자를 조명한다.

@ 무형문화재는 인류의 정신적인 창조와 보존해야 할 음악·무용·연극·공예기술 및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무형문화재 가운데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능 및 예능에 대해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의 지정은 형태가 없는 기능 또는 예능이기 때문에 이를 보유한 자연인이 그 대상이 된다.

무형문화재에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와 시·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청장이 무형문화재 중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심사와 토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단청장(丹靑匠)은 전통 목조 건축물의 천장, 기둥, 벽과 같은 가구부재 위에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오방색 기본색채로 채색을 하고 문양과 그림을 그리는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단청의 첫 출현은 단순히 미적인 목적은 아니다. 목조 건축이 발달한 가운데 옹이 등 목재의 단점을 해결하고 보존성을 높이고자 시작됐다. 단청장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 때의 화가 솔거는 황룡사 벽에 노송(老松)을 그렸는데 후에 그 절의 스님이 단청으로 보수했다는 내용이 있다. 단청은 위상, 권위를 상징한다. 이에 궁궐, 불교 사찰, 유교 사원 등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발전해왔다.

그 중 우리나라의 단청은 스토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양만 화려한 것이 아니다. 꼬임과 색상에 이야기가 담겨있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목조 건물에 사용되던 단청은 도자기, 공예, 의상 등 다양한 분야로 넓게 이어져왔다.

"전통미술은 현대미술과 달리 옛것을 이어받으면서 조금씩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나가는 미술이죠. 윗대의 작업을 이어가지만 오늘의 시대를 반영해 나가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단청에 대한 사명감이 느껴지는 전연호 단청장 전수조교의 말이다. 전연호 선생은 20년 넘게 조교로서 단청에 온전히 몸담아왔다. 대형 인쇄가 가능한 시대지만 선배·스승들이 했던 것 처럼 초본을 직접 그려서 작업하고 보관한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14호 조정우 단청장이 작고한 후에도 단청을 이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오고 있었다.


*입문계기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으로 미술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학창시절 때도 유화, 수채화, 민화 등 다양한 분야의 그림을 혼자 그려보곤 했다. 스무살 때 대학진학 대신 좋아하는 만화가를 찾아가 만화를 그리게 됐다. 그 때 김경암선생을 만나 건물단청 시공현장을 가보고 처음 단청을 만났다. 저 정도의 일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무작정 단청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것이 40년이 넘게 하고있다.

그 후 건물단청작업은 너무 단순한 도안작업이라는 생각에 불교회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단청과 불화까지 공부하게 됐다. 늦게나마 동국대학교에 들어가 전통미술과 불교예술사 등 체계적인 공부도 하게됐다.

*전연호 단청장 전수교육조교에게 단청이란
단청은 나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을 돌아본다면 한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았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원래 '단청'은 건물 단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수 있다는 매력이 내가 단청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예품이나 건물의 벽에 그림을 그려서 장식하는 작업, 고구려 고분안의 벽화나 사찰에 그려지는 불화나 벽화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나의 스승이셨던 조정우 선생님도, 또 선생님의 스승이셨던 일섭스님도 건물단청과 불화를 모두 섭렵해 무형문화재 단청장으로 지정 받았다.

*작업을 하며 보람된 일
내가 조성한 단청, 벽화, 불화 작품들이 단순한 그림이 아닌 부처님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 그 이상을 주고 있다는 것에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 그런 모습을 보고 들으면 가슴이 뭉클하다. 몇 백년이 지나면 이 또한 문화재처럼 후대에게 남겨질텐데 한 작품이라도 소홀함 없이 마음과 정성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업을 하며 느꼈던 것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어려워도 끝까지 할 수 밖에 없다. 옛것을 지켜나가는 이 일은 현실적으로 보면 쉬운일이 아니다. 지원을 넉넉하게 받는 것도 아니고 수요가 없는 분야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깐 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 후배 제자들도 다 그런 마음에서 이 일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금방 수입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이겨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국내는 그림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아직 그림을 그냥 보고 마는 것으로 생각하고 소장에 대한 생각은 적은 것 같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걸 아는 사람들로부터 그림하나 그려달라 그런 말도 종종 듣는다. 그럴 때 그림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다 공감할 것이다. 단순히 종이 위에 색을 입히는 것이 그림이 아니라 마음과 땀 그 이상이 들어가는 것이니까.

*에피소드
40년 전 문경의 깊은 산중의 한 사찰에 단청시공을 하러 갔는데 그때는 비계를 길다란 통나무를 새끼로 동여메고 설치해 놓고 작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려서 비계나무를 짊어지는 대신 크게 롤로 말아진 새끼다발을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산중턱까지 올라가다가 잠시 쉬게 됐는데 그만 새끼다발이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버렸다. 결국 다시 500m가 넘는 산 아래까지 내려가서 그 새끼다발을 주워서 짊어지고 산을 올랐던 웃지 못 할 추억이 있다.

불화 공부를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전국의 고찰을 다니면서 좋은 불화를 사진으로 담아 와서 초본작업을 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찰에서 사진촬영을 못하게 한다. 한번은 겁도 없이 문화재 실태조사를 왔다고 스님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서 쫓겨난 일도 있다.

*앞으로의 포부
남은 인생은 우리 전통문화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후진양성에 여력을 다할 예정이다. 대구시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는 수요일에 시민을 위한 반을 운영하고 있다. 경북불교대학에서도 강의를 하고있다. 특강을 요청하면 어디든 가서 한다. 단청을 알리는 자리에는 어디든 간다.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사명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제도적으로 안따라주니 어려운 부분도 많다. 보유자 지정을 대구시에서 아직 안해주다보니 전승, 장학생 양성에 대한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다. 그런 부분들이 빨리 해결된다면 후대에 단청을 아름답게 남길 수 있는 시간이 더 확보되는 것이니 좋을 것 같다.

*주요 학력 및 경력
1973 불교미술입문(구람 김경암선생)
1992 제14회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 금상수상
1996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이수자
1998 불교미술 개론서 '알기쉬운 불교미술' 저술
1999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14호 단청장 전수조교
2004 문화재청장 표창
2005 국가무형문화재 제118호 불화장 이수자
2005 '사찰에서 만나는 불교미술' 저술
2007 대구시장 표창
2012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장 표창
2017 문화재청장 표창
2019 제39회 대구시공예대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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