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요즘 각광받는 여행지다. 십여 년 전부터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별칭으로 찾는 사람이 늘기 시작하더니, 마침 한일 경제 분쟁의 여파로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발길을 돌린 사람이 많아서인지 넓은 벌판에 대형 마트처럼 자리 잡은 작은 공항엔 한국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아르바트 거리다.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를 본 따 만든, 분수대를 중심으로 찻집과 상점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거리로 야외 공연이나 모임이 많은 곳이다. 각종 놀이시설이 있는 해양공원, 금각만을 내려다보는 독수리 전망대도 관광 명소다. 이 전망대에 서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금각만과 금각만을 가로지르는 금각교를 굽어볼 수 있다. 극동함대본부가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금각교 근처엔 많은 군함과 배들이 보인다. 그리고 이차대전에서 맹활약을 하던 C-26 잠수함을 개조한 잠수함 박물관이 있다. 볼세비키 혁명군의 동상이 있는 혁명광장, 레닌동상이 있는 레닌공원 등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즐길 수 있는 관광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기착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에 이르는 7,400킬로미터의 길을 약 일주일 동안 달리는 횡단열차 탑승은 젊은이들이 한 번쯤 꿈꾸는 낭만적인 바람이다. 여행객들은 보통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골리나야역까지 횡단열차 레일 체험을 하는 편인데, 삐걱거리고 그르릉거리며 느릿느릿 달리는 기차는 팔구십년 대 우리나라의 무궁화호나 통일호 느낌이 난다. 기차는 해파랑길처럼 바다를 끼고 달린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오츠크해를 보면 러시아가 왜 기를 쓰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차지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러시아는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양받았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꿈꾸던 러시아는 그 지역에 '동방을 지배하다'라는 뜻을 지닌 블라디보스토크란 이름을 붙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남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교두보인 셈이다.

이것이 관광지로서 블라디보스토크의 모습이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는 우리에게 좀 더 각별한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인근 우스리스크와 더불어 연해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해양공원 쪽의 개척리에서, 다시 지금의 하바로브스키 쪽인 신개척리로 이주하며 블라디보스토크에 자리 잡은 한인들은 1919년에 최초의 임시정부인 노령임시정부를 세우고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다. 최재형, 이상설, 이동휘 등 독립운동가들이 사재를 털어 학교와 도로를 만들고 단체를 결성해 힘을 모아갔다. 하지만 한인들의 성장을 두려워한 스탈린은 1937년 한인 이주 정책을 펼쳐 20만 명에 이르는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킨다.

지금 하바로브스키의 한인촌 자리엔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신한촌 기념탑만 세워져 있다. 기념탑은 세 개의 커다란 대리석 기둥으로 돼 있다. 가운데의 가장 높은 기둥은 대한민국 국민을, 왼쪽 기둥은 북한 주민을, 오른쪽은 해외 교포를 상징한다고 한다. 신한촌 기념탑 외에 막대한 재산을 모아 그것을 독립군 자금과 학교 건설 등에 댄 최재형 선생의 생가, 서전서숙을 열고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던 이상설 선생 유허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이동휘 선생이 살던 집터, 조금 멀지만 크라스키노엔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동맹비, 1937년 러시아 한인 강제 이주 때 최초 집결지인 라그돌리노예역 등 많은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지를 잘 보존하고 국내에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용트림하는 도시이다. 거리는 활기에 넘치고 곳곳엔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넓히는 등 공사가 한창이다. 한국 자본의 참여도 활발하여 LG 다리, KT 거리 같은 이름이 붙은 구역도 있다. 그러다 보니 벌써 한인촌의 흔적이나 이동휘 선생 집은 사라지고 없다. 냉전시기를 거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무수한 유적들이 사라져 갔을 것이다. 남아있는 것이라도 지키고 알려야 한다.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여행 상품도 나오면 좋겠다. 굳이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직접 가서 보고 들음으로써, 풍찬노숙하면서도 독립에 대한 희망 하나로 버텨온 그분들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블라디보스토크는 해삼위(海蔘威)라고도 부른다. 해삼이 많이 나는 곳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해삼은 바짝 말려도 물에 넣으면 다시 살아난다. 둘로 잘라서 던져 넣어도 다시 자란다. 강인한 생명력이 우즈베키스탄으로, 키르키스스탄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흩어졌어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한인들을 닮았다.

마침 얼마 전에 읽은 전형철 시인의 '해삼위(海蔘威)'란 시를 다시 읽어본다.

"금각만(金角灣)에 앉아/ 편지를 읽는다// 라이터를 켜는데/ 두꺼운 외투의 단추를 따라/ 등이 켜진다// 아이훈의 필체를/ 너는 여간 닮았다// 길은 얼어도 항은 얼지 않고/ 빛은 유빙을 타고// 여하(如何)한가/ 어둠은 물과 뭍의 몸을 바꾸는데 // 배는 바다의 배를 가르며/ 청어 가시 같은 유성우를 쏟아낸다// 사선의 힘으로/ 맨몸을 핥는다// 동방을 정복하라/ 남쪽은 낮고 축축하니//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풍경처럼// 마음은 먼저 얼어버렸는데// 시베리아로 열차는 떠난다// 오랑캐가 죽은 아비의 이름을/ 말갈기에 묶어 보내고// 초원에 누워/ 돌을 안고 통곡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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