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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수요일]거울없는 미용실신숙자 수필가
   
오래전, 달마다 달력에다 동그라미를 그린 적이 있다. 하얀 머리 신사숙녀들이 기다리는 경로당으로 가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일행들과 도심의 변두리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가서 머리카락을 손질해드렸다. 젊은 사람의 왕래가 적은 동네라 우리의 방문은 언제나 환영을 받았다.

마을 잔치라도 있는 것처럼 부산한 가운데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짜 머리에 신이 난 할머니들은 손수 기른 채소나 과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날씨가 좋으면 마당도 좋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좁은 방도 좋다. 어디라도 보자기가 펼쳐지는 곳이 미용실이 된다. 서로가 둘러보는 가운데 파마약 냄새가 진동할 때쯤이면 한쪽에 놓인 전기밥솥에서는 구수한 밥 냄새가 우리를 즐겁게 했다.

사실 이득을 보는 사람은 우리 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용사 자격증을 거머쥔 우리는 대부분이 아이를 한둘씩 둔 주부였다. 취업이 어려운 우리는 궁여지책으로 자원봉사도 하고 기술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경로당을 찾았다. 알량한 기술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생색을 내고 후한 대접까지 받으니 그야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남을 위한답시고 행한 봉사 활동의 전부가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한번 자르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머리카락 아닌가.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머리카락을 배움의 기회로 제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면 자라는 머리카락이지만, 신체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머리를 함부로 대접할 이는 없지 않은가.

거울 없는 미용실을 이용하는 할머니들은 기꺼이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었다. "앞머리를 올려라, 뒷머리를 짧게 잘라라" 살펴준다. 약값 몇 푼 들여서 내 손끝으로 파마가 마무리되면 할머니는 금세 새색시가 된 것처럼 연신 머리 위로 손이 갔다. 거울이 없다고 일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기술이 어설픈 우리보다 할머니들은 본인의 파마 시간이나 중화제 뿌릴 시간을 더 잘 알고 일러주었다.

할머니들이라고 머리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별한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렇다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른 모습이다. 파마가 잘 나온 머리도 있고 덜 나온 머리도 있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무도 우리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 공짜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

부스스하게 왔다가 말쑥하게 간다고 좋아하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기술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우리도 그 순간만은 어깨가 한 뼘은 올라갔다.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어 보이는 작은 마을 사람들은 사시사철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삶의 밑바닥에서 느끼는 쓰라린 상처까지 살펴주는 마음의 거울이 서로를 비추었다.

처음으로 남자 머리를 깎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이 있었다. 난생처음 가발이 아닌 사람 머리를 손질하려니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잡고 있던 바리깡을 놓아 버리고 싶었을 때 용기를 준 사람이다. 일행들은 하나같이 실수를 하더라도 대범하게 다가서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게 행동이 따르지 않았다. 커트 보까지 씌워 두고 똥 마련 개처럼 빙빙 돌고 있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자신 있게 해 보라며 환하게 웃어 주었다.

굵은 가발과 달리 윤기 없는 흰 머리는 두피에 납작하게 숨죽어 있었다. 한차례 바람이라도 지나가면 일어나려나. 흰 머리는 두피를 충성스럽게 보호하고 있었다. 이쪽을 들고 자르면 저쪽이 삐뚤고 저쪽을 고치면 이쪽이 올라갔다. 하다 하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실력 있는 다른 사람에게 가위를 넘겼다. 결국, 할아버지는 군인 아저씨보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로 변신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 경로당을 찾았고 다시는 안 오실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지난번 실수한 경험 때문에 혹시나 그분과 마주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 터라 나로서 이분의 등장은 여간 두렵지 않았다.

삐뚤삐뚤하게 생긴 두상에 손을 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아버지는 다시 머리를 깎아 보란다. 심호흡과 함께 흰머리를 잡았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손끝에서 일렁이다 차분히 바닥으로 내려앉으면 할아버지의 목덜미가 시원해졌다. 서툰 솜씨인 줄 알면서도 오랫동안 앉아 있어 준 할아버지께 "고맙다"고 말하니, 도리어 "미남으로 만들어 줘서 내가 더 고맙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리는 단골이 되었다.

거울 없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일행들은 실전의 경험을 쌓기 위해 여기저기 쫓아다녀도 솜씨는 더디기만 했다. 조급해진 친구들은 하나둘씩 어려움을 감소하고 취업의 길을 나섰다. 나 또한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경로당의 발걸음은 끊어졌고 더 이상 단골 할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거울 없는 미용실 운영도 끝이 났다.

가까운 식구들조차도 선뜻 머리를 내놓지 않았을 때 봉사활동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돈 없는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 마음씨 고운 사람을 찾아가서 선심 쓰듯 그들의 머리카락을 연습용으로 삼았다. 그렇게 익힌 기술로 여러 해 밥벌이를 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경로당이 있던 자리는 산업개발로 이제 옛 정취를 찾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사라진다 해도 마음에 담겨 있는 것까지 앗아 갈 수는 없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간들 내게 후한 인심을 써주던 그분들이 잊힐 리야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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