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 주말 17호 태풍 타파가 오는 바람에 준비된 여행을 하지 못했다. 전통숙박을 체험하기 위해 잡아둔 숙소도 예약을 취소했다. 다음에 다시 하기로 했지만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할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가을이 되면 혼자서 어디론가 탁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여름철 성수기에 인파와 바가지요금으로 짜증스럽기만 했던 여행보다 부담 없이 이것저것을 보면서 생각할 기회를 주는 가을여행을 더 선호한다. 맑은 가을날씨에 탁 트이는 가슴으로 혼자만 즐기는 상쾌함이 너무 좋다.
여행 중 넓은 들판을 넘어서 먼발치로 보이는 건물이나 산을 본다. 굳이 단풍과 같은 남들이 다 즐기는 경치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범한 들판이나 시골집, 바위산 등이 내게는 좋은 구경거리다.
이런 여행은 가시거리가 긴 가을 하늘에서 가능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한 태풍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다시 태풍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추석 직전 14호 태풍 링링도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한번 더 온다고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

태풍으로 취소된 것은 나의 여행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취소나 연기된 가을행사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행사를 준비한 관계자들은 맥이 빠진다. 그들도 태풍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가을에 행사가 많은 이유는 하늘이 맑고 높기 때문이다. 가을하늘이 맑고 푸른 이유는 공기 중에 먼지가 적어서 낮은 고도에서 빛의 산란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야외 행사로서는 좋은 조건이다. 천고마비라는 표현도 있다.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도 가을에는 많지 않다.
이런 가을하늘의 조건은 우리나라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애국가 3절에는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특유의 상쾌한 가을하늘을 보기 어렵다. 비가 많이 오고 흐린 날씨로 맑은 날이 별로 없었다. 특히 올해 9월은 연이은 가을태풍으로 비가 많이 왔다. 비는 농사를 짓는 봄과 여름에 필요하지만 추수하는 가을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 10월에는 좀 맑아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앞으로 날씨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했던가. 인생여정에서도 가을하늘과 같은 맑은 일정이 좋다. 이는 예측가능성과 연결된다. 앞날이 예측이 되면 설계를 하고 차근차근 이루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예측이 안되면 포기를 한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방법이 보이지 않으니 헛된 노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답이 없는 삶이 된다.

개개인의 인생 뿐 아니라 사회전체로서도 예측가능성이 필요하다. 예측을 할 수 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 예측불가능은 혼란을 낳는다. 100%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야만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는 예측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진다. 경제와 관련하여 일자리도 불확실해지고 성장률도 낮아지게 되는 악재가 많다.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과학기술의 변화가 개인에게는 오히려 불확실성이 된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대체하여 청년실업 증가로 이어질 두려움으로 바뀐다. 국제 정세도 북핵문제나 일본과 무역마찰에 이어 얼마전 사우디아라비아 유정에 대한 드론 공격으로 국제유가가 오를지 모르는 악재만 늘어난다.
불경기로 고생하면서도 오히려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기현상은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예측가능성의 중요함은 악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확실하지 않는 호재는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어설픈 호재 발표는 거품만 높이고 결국 생산성을 헤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나마 예측불가능으로 좋은 것은 스포츠경기다. 우천으로 연기가 된 경기가 많은 프로야구에서 얼마 전까지 독주하던 SK가 연패를 당하면서 막판순위가 예측이 불가능해졌다. 올해 관중감소로 고생했는데 최종순위가 오리무중이 되면서 흥미를 끌게 되어 팬들이 야구장을 다시 찾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을 즐기기 위해서도 맑은 가을하늘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빨리 하늘이 가을 본연의 하늘로 돌아와 혼자 탁 떠나는 여행을 해보았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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