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아먼~ 그렇지~ 명창이다~'

▲ 권혁대 이수자

물질문명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 문화예술의 전승발전을 위해 우리 고유의 소중한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는 무형문화재와 그 전승자를 조명한다.

@ 무형문화재는 인류의 정신적인 창조와 보존해야 할 음악ㆍ무용ㆍ연극ㆍ공예기술 및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무형문화재 가운데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능 및 예능에 대해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의 지정은 형태가 없는 기능 또는 예능이기 때문에 이를 보유한 자연인이 그 대상이 된다.

무형문화재에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와 시ㆍ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청장이 무형문화재 중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심사와 토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고법(鼓法) 이란
판소리가 정착한 조선 중기 이후에 생겨난 것으로 판소리에 맞추어 고수(鼓手:북치는 사람)가 북으로 장단을 쳐 반주하는 것을 말한다.

고법은 판소리의 반주이기 때문에 고수를 내세우는 일이 없어 조선시대에는 이름난 명고수가 매우 드물었다. 또한 고수를 판소리수업의 한 방편으로 여겨 고법의 발달은 미미했다. 조선 후기에 들어 판소리가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발전함에 따라 고법도 발전하나,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전문적인 고수들이 나와 고법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는 소리꾼의 왼편, 청중이 보기에는 오른쪽에 앉아서 소리꾼을 바라보며 북으로 반주한다. 보통 소리북은 흔들리지 않도록 고리를 바닥 쪽에 괴어서 방석 위에 얹어 놓고 연주한다.
책상다리를 하고 앉지만 청중에게 발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흔히 소리꾼이 먼저 소리를 내면 고수는 그 내드름을 듣고 거기에 맞는 장단을 연주해야만 한다. 또한 소리꾼이 소리를 끝낼 무렵에는 미리 북가락을 준비하여 함께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소리의 완급 조절이나 강조, 빈 박이나 소리의 공백 처리, 음색의 변화, 추임새 넣기 등을 능수능란하게 해야 한다.

ㅇ연주법과 연주 자세
북을 치는 부분에 따라 합궁(채궁)자리·반각자리·온각자리·뒷궁자리·매화점자리 등을 구분해 연주하도록 하며, 북채를 쥐는 방법과 치는 법도 채궁채·반각채·온각채를 달리한다. 이렇게 자리를 구분하는 것은 음색 및 강약 조절과 관련이 있다.

ㅇ 추임새
추임새는 ‘추다',‘추어주다’라는 의미로서 소리판에서 고수나 청중이 감탄사를 내어 창자와 소리판의 흥을 돋우는 것을 가리킨다. 추임새의 기능은 강약을 보조하기도 하고 소리의 여백을 메우거나 북 장단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초반에 소리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거나 소리꾼의 상대역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처럼 다양한 기능과 역할에 맞추어 각각 적절한 상황과 위치에 추임새를 하도록 되어 있다. 자주 사용되는 추임새는 ‘으이’, ‘좋지’, ‘얼씨구’, ‘좋다’, ‘그렇지’, ‘아먼’, ‘얼쑤’ 등이며, ‘어디’, ‘잘한다’. ‘아-’, ‘명창이다’ 등도 간혹 사용된다. 추임새는 소리의 분위기와 정서에 맞게 구사되어야 한다.
슬픈 소리를 할 때에는 힘 있는 추임새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소리에 감탄하는 느낌의 감탄사로 추임새를 표현해야 하며, 소리꾼의 소리가 절정에 치달을 때 힘 있는 추임새로 기운을 북돋워 주어야 한다.


* 입문하게 된 계기
신작로 황톳길 가에 듬성듬성 장대같이 서있는 미루나무 그늘은 바람 따라 움직이는 코스모스와 조화를 이루는 아침에 상여 맨 앞의 빨간 명정과 노란공포를 앞세운 만장은 그 신작로 길을 수놓았고 상두꾼의 상여소리는 상여꾼 두건 뒤 꼭지를 타고 흘러 고스란히 내려앉은 신작로 한가운데로 흘렀다.
‘어~어~~허어~어 넘차 어이가리 넘차 너화너~엄
인제 가면 언제나 올라요 오시는 날을 일러주오~
황천길이 머다 더니 저 건너 앞산이 황천길이로다‘
다섯 살 어린 나는 꽃상여를 멀찍이서 따라가곤 했다. 상두소리에 나의 몸은 전율을 느꼈고, 구성지고 슬픈 가락은 아드레날린을 최고조로 상승시켰다.

상두소리를 하시던 분은 근대 오명창이요 국악인 중 최고의 벼슬을(통정대부) 하사받은 중고제의 대가 이동백 대 명창 선생님의 제자 박종대 선생님이었다.
판소리는 큰 가닥을 ‘제‘ 라고 하고, 그 가지를 ’바디‘ 라고 한다. 즉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그리고 누구누구 ’바디‘ 라고 한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 수성리에서 정기를 받은 이 몸은 중고제의 산맥과 바람과 흐르는 물을 마시고 자라서 그 끼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박종대 선생님과 우리 아버님과는 죽마고우였다.
코흘리개 동갑네기 친구들 대여섯 명이 윗목에 둘러앉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백발이 섧고 섧다. 백발이 서럽구나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보니 백발이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으로 기억한다.
당신을 위해 한 자락 소리를 허공에 질러대고 요령소리 파란 하늘을 흔들어 깨워줄 이 남기지 않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사뿐 사뿐 구름타고 멀리 가시는가 싶더니 역시나 황천은 머나 먼 길 아니고 마을 뒷산이었다.

* 권혁대 이수자에게 고법이란
나의 삶이다. 직업고수로(전국에 10여 명)로서 억울한 면은 창자가 자신 없는 소리로 공연 또는 경연대회에 참여할 때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면 공연히 고수를 탓하기도 하고 고수 스스로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반면 고수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명창이 완창의 무대(4~8시간)에서 힘들어 할 때 끝까지 소리를 이끌어 내어 소리꾼이 박수갈채를 받을 때 정말 뿌듯하고 뭔가 큰 걸 움켜쥔 기분입니다.
포항에 뿌리를 내린지 십여 년이 흘렀네요.
‘독도사랑국악사랑’ 포항 천하명인 국악 대제전(9월 28~29일 포항문화예술회관) 이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합니다. 3회까지 전액 개인 사재를 털어 해왔던 일은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포항시민의 힘으로 지켜 줄 것이라 믿는다.

* 고법을 하면서 보람된 일:

아내가 대통령상을 수상할 당시 앞뒤 좌우가 새롭고 41살 늦은 나이에 귀한 딸과 아들을 얻어 감사하다.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명창들이나 고수들 그리고 국악 동호인들이 “권혁대 고수의 고법은 한마디로 보는 이로 하여금 속이 후련하게 한다. 정확한 한배(어느 장단의 한 주기를 이르는 말, 어느 장단의 템포(tempo) 곧 빠르기를 가리키는 말) 멋들어진 선비 자세와 세련미 그리고 정제된 고법 기교의 완성, 무엇하나 빠질 데 없는 이 시대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고수다”라는 평을 받을 때 가당치 않은 평가이지만 참 행복하다.
아마도 그 이면에는 백남희 선생님의 대마디 대장단으로 끊어 치는 매력과 천대용 선생님의 화려한 북가락 그리고 김성래 선생님의 신출귀몰한 엇장단을 두루 사사해 독특한 북장단과 가락을 정립했기에 가능하다고 보여 진다.

* 에피소드
군 입대 전 잠시 대전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북소리를 들었다.
심장이 뛰었다. 찾아가서 사정을 여쭙고 잠깐 공부를 했다. 그러나 한 달도 채우지 못했다. 월사금이 없었다.
여차저차 세월이 여류하여 서울에 터를 잡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편제의 대가(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이순호(윤호) 선생님이셨다. 소리도 배우고 북 공부도 시작했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이순호 선생님의 학원 옆방에는 소리와 고법의 대가 고 백남희 선생님께서 종로 북방에서 계셨다. 고법의 정신세계까지도 길을 터주신 분이시다.

또한 지금의 아내(천희심 명창,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 수상, 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재직)를 만났다.
아내의 부친은 국립창극단에서 재직하며 고수로서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던 천대용 대 명고셨다.
당시 나는 서울의 좋은 직장을 버리고 아내를 꾀어 전주로 내려가자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소리꾼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날개를 펼 수 있는 곳이라 여겼다. 생면부지 타향살이는 파란만장했다.

권혁대 이수자 가족


어쨌든 2000년도에 내 아내가(당시 40세) 판소리 명창부에서 대통령상을 탔다. 그때에 장인어른(천대용 선생님, 광주광역시 판소리고법 무형문화제)께서 광주로 낙향했다.
공부가 다 익기도 전에 또 한 번 요령소리 바람에 나부끼더니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셨다.
가시기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이신 김성래(성권) 선생님께 나를 맞기셨다. 신출귀몰한 엇박으로의 장단연행은 그 누구도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경지의 김성래 선생님이다.
이제는 모든 스승님들께서 아마도 저놈이 북을 얼마나 잘 치는지 못하는지 내려다보고 계시리라!

심정 권혁대는

'하늘은 구름 펼치고
거둬들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산은 굽은 길도
오르내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높은 파도는 올라섰다 내리기를 반복해도
흐트러짐이 없네'


* 정부나 시민에 바라는 점
유형의 자산은 보인다 하고 무형의 자산은 없다하면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도 없고 생각의 논리로 풀어낸 철학서나 경전은 불태워져야 합니다.
문화는 예술과 엄연히 다릅니다. 문화가 하드웨어라 하면 예술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이제 현시대를 넘어 미래에는 예술이란 삶에 질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명운입니다.
포항시가 문화도시로 정착 하려면 전통의 근본을 일구어내고 그것을 시민과 함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본다. 권수진 기자

* 주요 경력
故 천대용 선생으로부터 판소리고법 사사(광주광역시문화재)
故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 김성래 선생으로부터 판소리고법
이수(1998-2005)
故 이윤호 선생·천명희 선생으로부터 춘향가 사사
1997년 제17회 전주 전국고수대회 일반장년부 대상(문체부장관상)
1999년 제11회 순천 전국팔마고수대회 명고부 최우수상(문광장관상)
1999년 제1회 장흥 전통 가·무·악 전국대회 종합최우수상(문광부장관상)
2001년 제21회 전주 전국고수대회 대 명고수부 최우수상(문광부장관상) 등 다수 수상
2012년 고수 인생 30주년 기념 고법발표회 서초동 국립국악원
2003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이수자 지정
판소리와 서예와의(효봉 여태명) 만남 기획공연 연출
판소리의 원류를 찾아서, 판소리와 해원 굿의 만남 기획공연 연출
(사)동초제 판소리 보존회 경북지회장
포항 천하명인 국악대전 집행위원장
(사)국창 이동백 선양회 부이사장.
심정국악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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