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구월의 강에 해가 저문다. 바다로 몸을 섞으려 가는 길목, 머문 듯 유유한 강 위로 황금빛 노을이 스치듯 스며있다. 인내산 동쪽에서 발원한 물줄기의 흐름은 마침내 하류에 이르러 영일만을 앞에 두고 잠시 숨고르기라도 하는 걸까. 섬 안 뜰에 내리는 푸른 이내와 방장산 넘어가는 붉은 수수의 새알심 같은 석양 앞에 고요하다. 언제부터였을까. 받아들이고 아우르기만 하는 저 유장한 흐름의 묵념은. 아마도 철 이른 낙엽하나 슬며시 강 위에 내려앉을 때 부터였으리라.

가을이다. 하늘은 높아지고 강은 깊어가는 계절이다. 보탤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시선으로 강을 바라본다. 봄부터 섬 안 뜰을 보듬느라 한 층 더 깊어지고, 한 뼘 더 수척해졌다. 이제는 안식을 위해 등을 뉘일 시간인가. 가만히 귀 기우려 보면 여물어 가는 강물 소리도 들린다. 한 여름 불꽃같은 사랑이 사그라진 뒤의 처연한 저 가을 강.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자식 아홉에게 짜 먹이고 짜부라진 내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강이 저물고 있다. 방장산 숨어드는 붉은 노을을 품고 조용히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강.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물은 밀고 밀리며 서로 등을 다독이며 흐른다.

서두름이 없다. 강은 깊어질수록 고요할 뿐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경쟁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흐름이라는 묵언으로 속삭인다. 앞선 자나, 뒤쳐진 자나 모두 같은 강물 속에 있다고. 매일 수없이 상처받고, 매일 홀로 자신의 상처를 꿰매는 나에게도 이른다. 인간의 한 생도 이렇게 더불어 가는 것이라고.

애초에 강은 인류문명의 근원이었다. 형산강 또한 과거를 소중히 품고 현재를 아우르는 무한의 품을 가진 강이다. 찬란한 신라의 기운(氣運)을 이어받아 용광로의 불씨를 살리는 숨 쉬는 강이다. 그 흐름은 장대하고 유하다. 그 유장한 흐름은 쉼 없이 흐르고 흘러 강변의 뭇 생명을 키우고 살을 붙였다. 형산강이 동해로 향해 가는 크고 긴 여정에 함께 한 곳들은 저 강이 있어 기름지고 넉넉했다. 도도한 흐름으로 끝없이 넓은 충적 평야를 펼쳐 가꾸었다. 쉬지 않으면 마침내 이루는 그 끈기로 도시의 부흥에도 한 몫 했다. 어느 대가 집 종부의 후덕한 삶이 이러했을까. 아낌없이 주는 강의 그 선택받은 무한의 자원을 사람들은 지혜롭게 활용했다. 강변의 도시들이 좀 더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은 저 강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흉년에도 소작농들의 생의 끈을 바투 잡아주던 강이었다. 더 추운 겨울로 가는 철새의 마른 울음에 귀 기울이고, 두레상에 마주앉아 죽 한 그릇 비우는 소작농들의 달그락 거리는 숟가락 소리도 끌어안았던 강이었다. 날마다 달의 모양이 바뀌어 가는 밤하늘, 시시각각 빛깔과 형태를 바꾸어가는 구름을 품어 안은 하늘을 강물 위에서 본적이 있는가. 순리에 순응하는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강이라면, 어머니의 속정 같은 저 흐름의 깊음은 숭고한 사랑이고 고요는 믿음이다.

아버지는 드넓은 섬 안 뜰 어디에도 땅 한 평 없이 사셨다. 분별없던 시절. 부모님의 전답 문서를 빼내 죄다 팔아치운 뒤 밖으로만 나돌던 사람이었다. 어찌 땅의 소중함을 알았겠는가. 귀하게 자란 외동아들이랍시고 농사도 서툴렀다. 그런 아버지 곁에 일생 흙에 묻혀 땀으로 지낸 어머니가 있었다. 바지런하고 손끝이 맵기로 소문난 어머니였다. 근동의 많은 사람들이 씨 뿌리는 계절이면 우리 집 사립문을 들락거렸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떨어진 씨앗들이 섬 안 뜰에 안착하면 형산강이 보담아 살을 붙였다. 그런 어머니를 믿고 지주들은 논과 밭을 내밀었다. 그러나 어느 지주가 기름진 문전옥답을 내어 주겠는가. 손길이 절실한 척박한 외진 땅이거나 자갈밭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땅에도 어머니는 물과 땀을 쏟아 부어 결실로 그들에게 보답했다.

농번기가 다가오면, 섬 안 뜰 농부들은 겨우내 묵혔던 도랑을 서둘러 정비했다. 녹슨 농기구들을 꺼내 갈고 벼르며 풍년을 기원했다. 그리고 형산강 수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섬 안 뜰에 부는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는 날. 해산한 산모의 젖 줄기 같은 물이 도랑을 타고 섬 안 뜰로 내 달렸다. 이때를 놓칠세라 농부들은 굳었던 근육을 풀고 허리띠를 옥죄며 논에 물을 가두고 논둑을 쳤다. 한 해 농사의 절반은 이미 시작된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내 땅에 농사를 짓던 날. 어머니는 말했다. 농사의 절반은 물이 해 준다고. 부지런함을 보태면 풍년을 기약할 수 있다고. 그랬다. 강은 늘 그곳에서 물과 함께 있었고 숨 탄 것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강은 일생 기댈 언덕이었고, 억척같이 살아야 했던 삶의 원동력이었는지도.

강변을 서성인다. 저기 어디쯤 재치조개를 잡느라 까맣게 그을린 계집아이가 보인다. 반짝이는 까만 조개 몇 개 주머니에 넣고 코만 훌쩍인다. 여린 갈대에 숭어 아가리를 꿰는 아버지도 보인다. 땀에 젖은 무명 적삼 벗어놓고 앙상한 등에 물을 끼얹던 어머니도 보인다. 강이 품은 내 기억의 풍경은 애틋한 그리움이다. 그러나 따뜻하다. 누구의 어떤 사연인들 어떠리. 그저 모든 걸 받아들인 뒤 묵묵히 함께 흘러가는 저 강을 닮고 싶을 뿐이다. 어디선가 길 떠나는 철새들의 둥지 비우는 소리 분주하다. 정녕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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