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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전승자를 찾아서] ⑮백솔이 국가무형문화재 30호 가곡 이수자
   
▲ 백솔이 가곡 이수자
물질문명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 문화예술의 전승발전을 위해 우리 고유의 소중한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는 무형문화재와 그 전승자를 조명한다.

@ 무형문화재는 인류의 정신적인 창조와 보존해야 할 음악ㆍ무용ㆍ연극ㆍ공예기술 및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무형문화재 가운데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능 및 예능에 대해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의 지정은 형태가 없는 기능 또는 예능이기 때문에 이를 보유한 자연인이 그 대상이 된다.

무형문화재에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와 시ㆍ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청장이 무형문화재 중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심사와 토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가곡이란

가곡은 2010년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다.
흔히 가곡하면 선구자나 목련화를 떠올리기 쉬운데 우리나라에는 국악성악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가곡이 있다. 정가 중의 한 장르인 가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1969년) 되었으며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가곡의 역사
가곡이 언제부터 불려 졌는지 알 수는 없으나 조선조 세조 때의 음악을 싣고 있는 대악후보(大樂後譜)라는 악보에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이 가곡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만대엽(慢大葉)의 악보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세조 이전부터 불렸음을 추측할 수 있다.

가곡의 원형이었던 만대엽의 뒤를 이었던 중대엽은 17세기 전반부터 성행하여 17세기 후반에 파생곡을 만들면서 발전하다가 18세기 전반에 이르러 차츰 없어지면서 현대에 불리어지고 있는 비교적 빠른 속도의 가곡인 삭대엽(數大葉)이 파생된 것이다. 여창가곡이 등장하는 시기로는, 남성들에 의해 주도 되었던 가곡이었지만 역사에 여창가곡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략 19세기 초로 보여 진다.

▷가곡의 연주형태
가곡은 평조와 계면조의 두 가지 선법이 있는데 현재 남창가곡 26곡, 여창가곡 15곡이 있어 모두 41곡이 있다. 가곡은 시조시를 노랫말로 하는 가장 오래 된 노래로서 악기편성은 장구, 대금, 해금, 거문고, 세피리, 거문고 등으로 편성된 소규모의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연주한다. 가곡을 다른 말로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불리며 흔히 범패, 판소리와 함께 한국 3대 성악곡으로 꼽힌다.

▷정가의 특징
정가(가곡. 가사. 시조)로 분류되는 곡들이 갖는 공통점은 첫째, 매우 느린 편이다. 둘째, 전통성악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으며 유장하며 품격 있는 노래이다. 셋째, 자연의 흐름과 닮아 있는 노래이며, 시조시(時調詩)나 가사, 한시(漢詩) 등 운율적인 문학작품을 노랫말로 한다.

▷가곡, 하늘의 소리
강하고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있는 명곡이라 할 수 있는 가곡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아마도 태어나서 들어 본 음악 중에서 가장 느린 곡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느려서 지겨울 것 같은 가곡을 차분히 여러 차례 감상 하다보면, 마치 시간을 들여 홍어의 맛을 알아 가는 것처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속에서 최고의 예술성과 무한초월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입문하게 된 계기
- 나의 배냇소리 우리엄마
어릴 적 풀피리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등 온갖 자연의 소리가 내겐 음악이 되고 음률이 되어 내 귀에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런 음악적 뿌리는 나를 낳아주신 엄마다. 농사일, 노래, 언변 ,고운 맵시 등이 모두 빼어나신 팔방미인 이신데다 대쪽 같은 성품이 때론 무섭기도 했던, 그리고 늘 논밭에서 일하시는 모습의 엄마였는데 그날은 완전히 다른 엄마였다.

기억의 그날은, 고등학교 하굣길에서 내가 알고 있던 엄마가 아닌 천부적인 예인으로서의 엄마를 만났던 날이다. 마을회관을 지나치던 중 장단과 하나가 된 엄마의 춤사위! 많은 동네 어르신들 중 엄마만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책가방을 든 채로 가만히 숨죽이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 우리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는 완전 다르네!"

그리고 엄마의 노래는, 아니 소리 자체는 그 노래에 문외한 일지라도 소름이 돋게 하셨고 ‘녹동댁(엄마 택호)의 장구소리는 자던 사람 발뒤꿈치도 까닥이게 하고 전봇대도 춤을 추게 할 정도’ 라고 듣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런데 엄마는 악기나 노래나 춤을 단 한 번도 배우지 않았고, 시골의 삶이었기에 메스컴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며 사셨다.

- 우리엄마의 공식 첫무대
5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엄마는 나의 두 번째 개인 공연 때 일흔일곱의 나이로 처음으로 조명이 비추이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종민 선생님께서 사회를 보셨는데 엄마의 리허설 때 노래를 들으시고는 ‘솔이는 이제 노래하지 말고 엄마를 노래하시라고 해야겠다’고 우스개소리를 하셨다. 그 말씀에 덩달아 우쭐했던 기억이 난다. 전국 큰 국악행사에 거의 사회를 맡으시면서 뛰어난 명창들의 다듬어진 소리를 다 들으신 최종민 선생님께서도 엄마 말씀을 하시면서 놀랐다고 하시며 ‘우리 백솔이에게 이런 엄마가 계셨구나!'라고 하셨다.

- 내 음악의 뿌리 되시는 우리엄마!
엄마의 끼의 흐름이 1남 5녀 중 내게로 가장 많이 온 듯하다. 살면서 내가 의식치 않아도 많은 소리와 음악이 내 귀에 절로 들려와서 오로지 나 홀로만의 음악이 되어 속으로만 꽁꽁 얼어 있었다. 사춘기 때 꿈에 대해 막연하여 ‘학교는 왜 꼭 가야하지?’ 하며 은근 반항했던 문제의 실마리가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서서히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할 길도 모른 체 세월이 그냥 흘러만 갔다. 결혼 후 일상이 시들할 즈음 어떤 계기로 가족과 주변의 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악전공을 하게 되어 속에 있던 음악을 풀고 다듬기 시작했다.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님들이 내게 전수해 주시는 과정에서 “받아들임이 놀랍다 신기하다” 하시는 분에 넘치는 극찬을 해 주셨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 백솔이 이수자에게 가곡이란
상생하는 소통이다. 가곡 전수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행복한 소통을 한다.
하늘의 음악이다. 먼저 정가는 땅의 음악이 아니라 하늘의 음악이다.
건강한 호흡이다. 건강한 숨이라고 하는 단전호흡이 가곡을 통해 절로 된다.
보물찾기이다. 숨어있는 소리를 찾고 또 찾으면서 건강한 호흡을 되찾는 보물찾기이다.
수준 높은 우리 음악이다. 박자의 개념을 초월한 호흡으로 노래하는 수준 높은 노래이다.
아름다움이다. 원래 하늘이 주신 선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찾게 하는 노래이다.

* 가곡을 하면서 보람된 일
일부러 시간 내어 단전호흡 할 필요 없이 가곡을 부르면서 단전호흡이 절로 되니 심신이 건강해져서 그 기운을 사람들에게 돌려 줄 수 있음이 좋다.
어느 작은 공연에서 나의 노래를 들은 관객이 뭔지 모를 감동과 함께 지금까지 살면서 쌓인 마음의 응어리가 녹아났다는 말을 들을 때, 그리고 정가를 듣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있었네요" 하며 감동 받았다고 할 때 보람을 느꼈고, 십여 년 학교 예술강사로 활동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국악이 낯선 음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힘차고 예술성이 높은 음악임을 알려준 것이 보람스럽다.

* 에피소드

- 언제나 떨리는 무대
무대는 설 때 마다 긴장 된다. 충분히 연습이 되었다 싶어도 순간 다른 생각이 퍼뜩 들어와서 가사를 순간 아차! 할 때도 있는데 특히나 느린 정가는 민요처럼 비교적 한 음 한 음 또박또박 부르지 않고 긴 박자에 모음을 길게 풀어 ‘아~으~아~’로 노래하기에 모음만 길게 부르는 곳에서 가사나 박자를 놓치게 될 때가 있다.
서울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의 공연이 생각난다. 나의 스승이시며 가곡의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이신 김경배 선생님의 정기공연에서의 진땀났던 공연이 생각난다. 가곡 연주 중 살짝 어긋나고는 제자리를 잡았지만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마치 현실과 다른 곳에 내가 있는 듯 아무 생각이 안 났던 기억이 있다. 김경배 선생님께선 점잖으신 성품이시라 말씀은 않으셨지만 끝나고 무대 뒤로 와서 부끄럽고 허탈한 마음에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았던 기억이 난다. 다행이랄지 정가를 정확히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정도 실수는 잘 모를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됐다.

- 내 속에만 있던 음악! 자연과 호흡하다
처음 무용을 접했을 때의 일이다. 그냥 손을 옆으로 살짝 들고 선생님 따라 연습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끝에 어떤 기운이 느껴지며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고작 몇 번 배우고 났을 때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왔기에 언니가 원하지도 않는데 스스로 한복을 입고 언니 앞에서 음악에 실려 내 멋대로 즉흥 춤을 선보인 적이 있다. 그 때 언니는 그런 나를 보면서 지금 동생이 어디 단단히 빠진 게 아닌가하여 살짝 걱정 했을 수도 있었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쑥스럽고 민망하다. 악·가·무에 다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싶다. 그리고 배운 노래를 많은 분들께 전수하고 싶다.

- 훌륭한 스승님들과의 만남!
국가무형문화재 29호 서도소리 인간문화재이신 김광숙 선생님께서 서도소리를 사사해 주시어 분에 넘치는 선생님의 사랑과 극찬을 받으며 서도소리 이수자가 됐다.
김선란·이유라 선생님께서는 경기민요를 알차게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재학시설엔 여창가곡 인간문화재이신 조순자 선생님으로부터 가곡을 알차게 배우는 좋은 운을 맞이했다. 졸업 후 가곡에 대한 갈증이 있어 다시 지금의 스승이신 가곡의 인간문화재이신 김경배 선생님께 배우면서 2012년에 가곡 이수자가 됐다.

* 정부나 시민에게 바라는 점
먼저 나 자신이 우리음악의 뛰어남과 아름다움을 많이 전하지 못해 아쉬움을 갖기에 ‘마음은 입을 잊고 입은 소리를 잊고’ 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노래하는 정가가객이 되고자 한다. 정부나 시민에게 바라는 점은 우리말로 된 우리의 음악이요. 고유한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을 바래 본다.

* 앞으로의 포부
끊임없이 배우며 전수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지금 세대는 타문화에 대해 열광 하는 거에 비하면 우리문화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문화는 반대로 해외에서 인정받으면 그때 비로소 '어? 그런 문화가 있었네' 하는 정도인 것 같다. 그래서 성인들과 특히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문화에 있는 다양한 아름다운 노래를 전수하기를 원한다. 자문화가 가장 세계적인 것은 당연하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서와 세계인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음악가가 되는데 일조하고 싶다.

각박하고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도 없이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이 시대에 각자 하늘로부터 받은 원래의 아름답고 선한 마음에 터치할 수 있는 엄마 같은, 고향 같은 노래를 부르는 정가인이 되기를, 정가가객이 되기를 원한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악기가 사람의 소리라고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가족의 큰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을 전하며 나의 노래와 음악이 먼저 가족들에게 희망의 노래가 되기를 소망한다. 가르침을 주신 김경배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노래가 많은 분들의 마음에 닿기를 소망한다. 권수진 기자

* 주요 학력 및 경력
국가무형문화재 29호 서도소리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30호 가곡 이수자
동국대 대학원 한국음악과 졸업
포항 백솔국악원 원장
개인 공연(발표회) 3회

권수진 기자   5369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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