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그런 것들이 있다. 느리게 자기만의 내력을 가지고 있는 오래된 것들이다. 그것들엔 어떤 독특한 이야기와 표정이 있어 마음이 간다. 누구나 순해 지고 겸손해져서 깊어지는 것들에게 끌리는 것은 편안함 때문이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자신만의 시간을 정직하게 보내며 다사로움과 아늑함을 간직한 채, 존재감 없이 그 자리에 과거로 남아 아련한 그리움도 준다.
서두르던 발걸음을 나도 모르게 멈춘다. 시장 입구에서다. 마치 기름통에 빠진 생쥐 모습을 하고 늦더위를 식히고 있는 저 까만 철 덩어리. 군밤 튀기기다. 여름 내내 몸조리라도 했는지 반질반질 때깔 좋게 나타났다. 정직하게 낡은 모습을 하고 반팔차림의 오가는 이들을 빤히 쳐다보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난전에 늘어놓은 푸른빛이 도는 햇밤 몇 소쿠리를 끌어안고 ‘빨리 여물어 나무에서 내려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소.’ 라고 속삭이는 듯 정겹다.
저 기계를 저 자리에서 본 것만 수 십 년이다. 명확하지는 않아도 주인도 예전의 그인 것 같다. 오랜 시간 주인과 순명하며 살아온 탓일까.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를 닮았다. 보살핌이 살뜰했을까. 기름칠만 하면 매년 새것인양 하고 짱하니 나타나 저 자리를 지킨다. 작년에도, 저 작년에도 저 까만 쇳덩이는 사막에서 길 잃은 단봉낙타처럼 밤나무 곁을 맴돌며 알밤 품는 꿈만 꾸었으리라. 농익은 밤톨이 입을 벌리는 순간만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가을이 오면 마침내 까만 쇳덩이의 진득한 기다림은 이루어지고, 겨우내 알밤을 배가 부르도록 품었다. 자신의 불덩어리 위에서.
시뻘건 불꽃 위에서 반짝반짝 돌아간다. 쐐액쐐액 거칠게 공기를 들이켜고 열기를 내뿜는다. 완성의 그 시간을 위한 기원의 간절한 소리 같다. 그리운 이를 품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오매불망 그리던 임을 품었으니 뜨겁게 사랑하는 중이리라. 설익은 것들의 단맛을 보태기 위해 불덩어리 위에서도 의연한 저 모습. 한 댓 박 알밤을 품고 산달을 앞둔 만삭의 가뿐 숨소리를 내면서 몸을 달구고 있는 군밤 튀기기. 어느 시골 고물상에나 있음직한 작은 기계가 번화한 도심 시장에서 알밤을 튀기고 있다.
반갑다. 눅눅한 듯, 낡고 오래된 것에는 함께 공유한 사람의 추억과 삶이 녹아있다. 매캐한 냄새가 나던 오래된 할머니의 궤짝을 들여다보듯. 무언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도 같다. 까만 그 쇳덩어리에서 그 오래된 냄새를 만난 것처럼 설렌다. 쪼그리고 앉아 귀를 모은다. 긴장한 귀를 다독이며 뻥 소리를 기대해보지만 소리는 없다. 슬며시 한줌 압을 빼낸 뒤, 입 벌린 알밤들만 소쿠리에 뱉어 낼 뿐이다.
오래 전, 보았던 땅 끝 해남의 그 집도 그랬다. 한 세기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 단단한 고요라는 정서가 있었다. 집과 같이 세월을 함께 한 흙돌담은 숱한 세월의 부대낌에도 의연했다. 온갖 풍상에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초연해진 고즈넉함이었다.
서걱대는 댓잎소리만 시간을 읽어내던 그 집은 남편의 큰 집이었다. 뼈대 있는 집안의 본가답게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육중한 대문의 빗장. 아무나 허락지 않을 그 무게를 이기고 들어서면, 닳아 반들반들한 댓돌 위로 높고 푸른 하늘의 청아한 아름다움이 또 한 자락 기억으로 쌓이고 있었다. 한 집안의 오랜 내력과 풍상을 온몸에 새긴 굴곡진 패인 홈. 수없이 받아 들던 신발 얘기를 구구절절 들려줄 것만 같기도 했다. 기능에 가치를 두었을 때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운 발견이었다. 한없이 위로 오르고자 했을 때 보지 못했던 낮은 것들의 의미이기도 했다.
종부는 대대로 물려받은 유기그릇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까마득한 깊이의 뒤 안 우물물을 길어 은은한 정성을 담아 내 놓았다. 세월에 무심한 듯,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그것들과 호흡을 맞추며 살아가는 듯한 종부의 모습 또한 고적한 부드러움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인 뒤에 오는 연륜의 느낌이었다.
까만 쇳덩이가 입을 벌려놓은 알밤 한 봉지를 들고 오는 길. 묵은 동네를 지난다. 오래된 거리가 간직한 세월의 흔적 또한 익숙함이란 정으로 눅진하다. 지금의 동네 이름이 지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는 슈퍼 앞에 멈춘다. 묵묵히 동네를 지켜왔다는 오래된 그곳 낡은 평상 위에서 어르신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늙음으로 더욱 간절해지는 맛이라 소주보다 즐겨 찾는다고 하신다. 햇살 한 줌 곁들인 즐거운 목 넘김이다. 알고 지낸 세월만 수 십 년. 정으로 쌓은 얼굴들이 안부를 묻고 들려주는 저 작고 낡은 슈퍼. 사랑받는 곳이다. 왠지 모르게 모자란 것들, 부족한 것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도 든다. 그 앞으로 높디높은 하늘을 간직한 한 계절의 찰나가 또 지나가고 있다. 오래보고 오래가길 바라는 염원 한 줌 얹어 본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