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공인중개사로 인생 이모작을 하는 직장 선배를 찾아가 보았다. 현직 때 전문 자격증을 따서 퇴직 후 개업하기 위해서는 나름 똑똑하고 법률적인 지식도 있는 엘리트라야 한다. 이 선배도 그런 사람이었다.

대화중 자연스럽게 노후준비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적당한 자격증을 따서 퇴직 후 사무실을 차릴 생각인데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미리 따두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선배는 공인중개사가 만만한 게 아니라고 한다. 함부로 뛰어들다간 큰코 다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분야도 자격증이 전부가 아니고 활동할 토대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장 울타리 밖의 외부 환경은 생각보다 험난한 것 같다. 요즘 수명이 길어져서 퇴직 후에 전개될 제2의 인생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해도 만만치 않다.

직장인이 은퇴 후를 대비하여 준비하는 자격증 중에 아마 공인중개사가 가장 대중적인 듯하다. 현실적으로 주변에서 많이 접하는 일인데다 시험 난이도가 해볼 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초에 연수원에서 직무교육을 받는데 옆 강의실에서 은퇴설계를 위한 공인중개사시험 대비 과정이 있는 것을 보았다. 다른 과정과 달리 인기가 너무 좋아서 수강생이 되는 과정부터 엄청 치열했다고 한다.

나는 상대적으로 시험이 쉬울 때 이 자격증을 땄다. 부동산 투자 같은 자산관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준비했다. 분위기에 휩쓸린 측면도 없지 않다. 당시 자격증 취득 붐이 있었다. 새로운 천년을 맞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환경에 대처하는 경쟁력을 갖춘다는 논리였다.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용으로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선비들이 과거시험에서 대과에 응시하기 전에 초시로 진사나 생원시험을 준비하듯이 적당히 폼내며 공부할 수 있는 분야였다.

요즘은 시험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던 사람들이 보기 좋게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몇 년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은퇴를 앞둔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도 처음부터 직업으로 생각하고 도전한다. 공인중개사가 전문직업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부동산중개 시장은 만만하지 않다. 어설프게 개업했다가 사무실 운영비도 벌지 못하고 접는 사람도 보았다. 몇년전 세종 신도시에 부동산 중개업소가 많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보니 그중 상당수는 폐업했다. 진입장벽이 없는 만큼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도태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다가 보니 어렵게 땄지만 활용되지 못하는 장롱자격증이 많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격증을 땄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개업을 하면 한정된 시장규모에서 공멸하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나도 퇴직후 개업하지 못할 것 같다. 시절을 잘 선택하여 운좋게 자격증은 갖고 있지만 전문성은 전혀 없으니 시장에 뛰어들려면 다시 별도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파트가 재건축중이라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재건축이 완성되며 입주하기 위해 현재의 아파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는 방법을 검토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으니 나름대로 지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 너무 복잡하다. 세금이나 등기처리 등 법률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많다. 혼자 할 수 없어서 개업 중인 공인중개사를 찾아 조언을 들어야 했다. 시험합격을 위해 공부는 했던 분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 잊어버렸고, 부동산 환경도 너무 많이 변했다. 어설프게 공부한 지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는 26일 공인중개사 시험이 치뤄진다. 응시하는 수험생 중 아는 사람도 있다. 꼭 합격하기를 바라며 합격 후에도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갖추기를 권고해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도 안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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