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을숙 시조시인

자리밭 마을의 신화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신화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살았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나고 자랐던 곳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이 자리밭 마을의 신화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내려오는 풍경들이지요.

우리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우리와 같이 있었던 풍경, 먼 조상의 나이만큼 쌓여있는 풍경, 어떤 사람들은 그리움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슬픔으로 되돌아보는 풍경이지요.

자리밭 마을의 마산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세월의 흔적이 온몸에 배여 있는 얼굴입니다. 우리의 신화가 이제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피폐해지는 농촌, 자식들이 떠나버린 곳, 그러나 자리밭 마을의 신화는 할머니의 느린 발걸음처럼 조용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 신화 속 자리밭 마을의 마산 할머니와 풍경들은 오래 같이 살아 서로 닮아있습니다. 마을의 무덤이기도 하고, 돌담이기도 하고 다랑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마에 깊게 팬 주름이나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등은 마을 여기저기 보이는 덤불 같기도 합니다. 이곳에 모여 사는 어른들은 모두 대나무 숲을 닮았습니다. 사진가는 댓잎이 서걱이는 바람소리 같은 어른들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소리를 찍었습니다. 평생을 땅과 나무와 바람과 함께 살아온 삶을 찍었습니다.

마산 할머니는 아홉 가구가 살고 있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안동리‘자리밭’에 열일곱에 시집와서 아흔 여든 해를 사시다가 얼마 전 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허물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간직되어 내려온 오래된 신화 속에서는 영원히 할머니의 땅을 짚는 지팡이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글/이을숙 시조시인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