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조기집행 제도는 지난 2002년 처음 도입돼 2009년 '신속 집행'이란 이름으로 지자체까지 확대 적용됐다. 정부와 지자체가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이 제도에 대한 부작용이 끊이질 않는다. 이 같은 사실은 행정안전부가 전국 243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예산조기집행에 따른 애로 및 건의사항을 파악해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포항 남·울릉)에 제출한 자료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행정안전부는 매년 상반기와 연말에 한 번씩 지자체가 그 해 예산을 얼마나 썼는지 평가하는데, 집행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들을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고 표창도 한다. 지자체장들이 조기집행을 독려하면서 일선 공무원들은 서둘러 예산을 집행하고, 집행 실적에 큰 부담을 느끼는 등 각종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실적을 채우기 위해 빨리 집행할 수 없는 사업들까지 ‘예산 신속 집행률’ 산정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하는 것은 예산 집행 절차가 여러 단계로 이뤄진 건설·개발 사업들이다. 건물을 지을 때는 진척률에 따라 시공사에 공사 대금을 지불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 지침을 따를 경우 아직 공사를 하지도 않은 부분까지 미리 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다. 또한 경기도의 한 지자체는 올해 도서관 서적 구매 계획을 세우면서 혼란에 빠졌다. 인기 서적이 나올 때마다 책을 수시로 구매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럴 경우 ‘예산 신속 집행률’이 떨어진다. 결국 실적을 채우기 위해 상반기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책을 많이 사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산조기집행의 긍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다. 과거 지자체의 세부사업들이 관행적으로 하반기와 연말에 쏠림 현상이 있었던 것을 보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또한 국민의 체감도가 높고 돈이 즉시 돌게 하는 SOC사업, 일자리사업, 서민생활안정 등에 쓰이므로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전국 지자체의 조기집행을 겉으로 드러난 성과로만 평가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형식적으로 하다 보니 부작용이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박명재 의원은 “정부의 예산조기집행 강요로 인해 지자체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실적 채우기에 급급하고 불만 또한 팽배하다”며 “조기집행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부여로 지자체별 경쟁과열, 수시 실적보고로 인한 행정력 낭비, 상반기 공사집중 발주에 따른 관리감독의 소홀 및 부실공사 가능성 증가, 행정절차로 인해 조기집행이 불가능한 사업도 조기집행 사업 대상으로 분류 등 조기집행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늑장 행정’을 막고, 불용을 최소화 하려는 조기집행의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조화로운 재정집행의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 조기집행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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