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얼마전 모처럼 서울출장을 다녀왔다. 광화문 부근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올해 서울에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 광화문은 거의 2년만이다. 추억이 있는 곳이다. 약 3년 전 이 근처에서 1년 반 정도 근무를 했었다.
오랜만에 보니 낯선 곳이 많았다. 청계천 부근은 생소했다. 새문안길 근처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회의장소를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 이 지역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변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별로 다니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정확하다. 당시 없었던 건물도 몇 개 세워졌긴 했지만 서울이란 곳이 상전벽해가 될 정도로 확 바뀔 수는 없는 곳이다.
오랜만에 서울에 가는 것이니 다른 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시간도 없고 헤매다 지쳐서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이곳에 근무하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 서울을 보며 우리나라는 아직 균형발전이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방에 없는 것이 너무 많았다. 서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많았다.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서울에서 근무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로 여겼다. 집을 떠나 서울에 있을 때 많은 것을 해보리라 생각했었다. 서울 지리를 익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방 사람이 서울 중심가 지리에 익숙한 것은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최소한 촌놈소리는 안들을 테니까.
어려서부터 가지 않는 곳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성년이 되어서 일부러 이곳저곳을 다녀보았다. 실제로 서울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인천이나 의정부 등 인근지역 몇 곳에 일부러 가보기는 했다. 그러나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더 많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광화문 인근지역은 오히려 별로 다니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일들도 별로 하지 못했다.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서울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면서 서울에서 이룬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려버린 기회가 안타까웠다.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기회는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 기다림과 노력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면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 전부다.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결국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기회가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다른 때와는 달리 행동해야 한다. 기회주의라는 뉘앙스가 좋지 않은 용어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면 기회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기회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개가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다른 선택을 포기하는 가치로 기회비용이라는 말도 있다. 결코 손바닥 저럽 좁은 곳이 아닌 서울시내에서 한곳에 가보려면 다른 곳에 가는 기회는 포기해야 한다. 고작 1년 반 동안에 모든 곳을 다 돌아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서울에 있었을 때를 회고해보니 시내를 다녀 볼 시간을 잘 낼 수 없었다. 평일에는 일이 바빠서 숙소와 사무실로만 오가는 시계추 같은 생활을 했다. 주말에는 집이 있는 대구로 내려오기 바빴다.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움직이려면 돈이 많이 든다. 시간도 많이 걸렸다. 물론 그렇더라도 시간을 만들어서 가보아야 했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도중에도 가보고 싶은 곳이나 해보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만 시간에 쫒기고 비용부담으로 그냥 지나친 기억이 많다.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넓게 보면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하나의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한번 뿐인 인생에서 살아 있을 때, 아니 젊음이 있거나 기운이 있어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 중년이 넘은 이 나이에 돌아보면 현실적으로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을까
개개인의 사람뿐만 아니라 회사나 지역사회, 또는 한 국가에 있어서도 천운의 기회가 있었지만 준비부족으로 또는 다른 여력이 없어서 놓쳐버린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
자주하기 쉽지 않은 서울 방문에서 겪은 일을 통해 기회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은 하지 못하고 그냥 내려와야 했던 아쉬움과 함께, 현실의 벽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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