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현역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정치신인들이 발만 구르고 있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법을 어겨 혼란을 초래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7대 총선 때는 선거를 37일, 18대는 47일, 19대는 44일, 20대는 42일을 각각 앞두고 선거구 획정을 마쳤다. 선거법상 선거구획정안 국회 제출의 법정시한은 지난 3월 15일로 이를 넘긴 지 이미 오래다. 선거구획정위는 지역구 정수 등 국회가 합의한 획정 기준을 바탕으로 획정 안을 총선 13개월 전까지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하고, 이후 국회는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법정시한을 어겨도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는 현재 선거구 획정 작업을 시작도 못 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석을 몇 석으로 할지, 이를 시·도별로 어떻게 배분할지 등 선거구 획정에 필요한 기준이 정해져야 하지만, 여야는 현재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놓고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늦어도 연말까지 선거법 개정안 논의를 마무리해야 한다. 선거구 수 등이 결정된 뒤에도 선거구획정위의 내부 토의, 현지 실사, 정당 의견 청취 등 획정 작업에 통상 두 달이 걸리고, 내달 17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국 일부 예비 후보자는 자기가 출마할 선거구도 제대로 모른 채 선거운동을 시작해야 할 판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결국 현역 의원들만 '프리미엄'을 누리고 피해를 보는 것은 정치 신인이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정치 신인은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현역 의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서 “선거를 코 앞에 두고도 총선 전략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이 일부러 선거구 획정에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역 의원들도 '총선 90일 전까지는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선거법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의정 활동을 내세워 얼마든지 지역구민들을 만나 사실상 선거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의 불확실성은 유능한 정치 신인의 진입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 후보자 선출도 졸속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가 이처럼 직무유기를 일삼다 보니,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독립성이 보장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선거구 획정을 맡기자고 주장한다. 여야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을 늦추는 배경에 기득권 지키기가 있다는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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