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포 포항명성교회 담임목사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해마다 교회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킨다. 농부들에게는 무엇보다 열매와 곡식을 수확하는 기쁨이 있다. 바로 추수의 기쁨이다.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한 해 동안 돌아보면 감사의 제목들이 많다.

동물과 사람의 차이점은 감사에 달려 있다. 지구상에 사람만이 유일하게 감사를 표현 할 줄 아는 존재다. 인간에게만 있는 최고의 덕목은 감사다. 감사를 아는 자가 최고의 인격자다. 감사는 인격이 성숙되었다는 표시이며, 더 큰 행복과 만족을 누리는 청량제와 같다.

우리는 감사의 표본으로 밀레의 ‘만종’ 에서 발견한다. 가을걷이를 끝낸 저녁,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이 거룩함과 행복으로 가득하다. 하루 종일 땀에 범벅이 되고, 화장기 없이 태양에 검게 탄 얼굴, 그리고 흙투성이 몸이지만 이 그림이 감동을 주는 것은 부부가 머리 숙여 기도하면서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감사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감사의 기도다.

유대인들의 정체성은 감사절기에 있다. 그들은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킨다. 바로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이요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다. 그 다음 절기는 칠칠절, 혹은 맥추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절기이다. 이것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다는 뜻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다. 그리고 초막절 혹은 수장절, 장막절 이라고도 하는데 광야 40년 동안 지켜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시는 그 은혜를 감사하여 드려지는 절기이다.

신약의 탁월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은 위대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속에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지금의 미국은 세계인들이 살고 싶은 나라중의 한곳이다. 원래 미국은 인디언의 나라였다. 그곳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럽의 청교도들이 들어가서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물질이나 부를 위해서 미국 땅을 밟은 것이 아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에 도착했다. 미국사람들은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로 지키며 이날에 큰 축제를 즐긴다. 이날은 칠면조 고기를 요리해 이웃과 나누며 한 해 동안의 결실에 대해 감사하고 또 서로 정을 나누며 그들의 조상들을 생각한다.

1620년 영국의 청교도(Pilgrims) 146명은 신앙의 박해를 피해서 180톤 크기의 소형선박인 메이플라워(May Flower)호를 타고 신대륙을 찾아 나섰다. 이들의 항해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무모한 항해였다. 항해 도중 이들은 추위와 전염병에 맞닥뜨렸으며,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이들은 1620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 미국 동부 플리머스에 도착하게 된다.그러나 그곳에서 이들을 반긴 것은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이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식량부족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으며, 전염병까지 돌아 이듬해 봄이 되기도 전에 44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영국에서 가져온 보리와 밀은 토양이 달라 그해 첫 농사는 완전히 망쳤다. 그들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그들에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들에게 선한 이웃이 나타났다. 인디언들에게 쫓겨 다니다가 인디언 부족 가운데 왐파노아그족이 그들을 돕기로 하고 나선 것이다. 인디언들은 몇 종류의 씨앗과 함께 재배기술도 알려주었다.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그해(1621년) 가을 처음으로 낯선 신대륙에서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첫 수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청교도(개신교 신자인)들은 비로소 하나님께 추수감사를 바치며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물론‘감사축제’ 자리에 선한 이웃인 인디언들을 초대하였다. 이날의 축제가 바로 오늘날 미국사회에 이어져 오고 있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목숨을 건 항해에 이어 낯선 땅에서 황무지를 일궈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수확을 거둔 청교도들 그들이 마주한 수확의 기쁨은 ‘감사’가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과 자신들에게 ‘일곱 가지 감사’를 드렸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에 감사합니다. 둘째,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감사합니다. 넷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배가 부서지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다섯째, 일행 중 여자들 몇 명이 심한 파도에 휩쓸렸지만 모두 무사히 구출됨에 감사합니다.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달 동안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결국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됨에 감사합니다. 일곱째, 3개월 반 동안의 고통스런 항해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돌아가자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청교도들의 감사는 배고픔, 질병, 죽음 등 열악한 환경에서의 감사였다. 그리고 그들의 감사는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감사가 아니라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인디언과 더불어 함께 나누는 감사이기에 더 아름답다.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다. 베픔에는 세 종류가 있다. 아까와 하며 베푸는 것, 의무적으로 베푸는 것, 그리고 감사함으로 베푸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감사하며 또한 우리사회의 약자들과 함께 베풀고 나누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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