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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문화유산답사기]<4> 거제 둔덕기성김상조 문화관광해설사
   
둔덕기성은 거제시 우봉산 자락 해발 300m 신라시대 산성이다. 우봉산은 거제도를 한 바퀴 돌다가 통영 견내량 건너기전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성으로 가는 길은 우선 둔덕면소재지에서 거림리로 달리다 유치환기념관 네거리에서 왼쪽 방향이다. 성 아래에선 약 2.1km 임도를 타야 한다. 임도는 승용차 한 대가 일방통행 겨우 다닐 수 있다. 중간 중간 마주 오는 차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성벽아래 승용차 서 너 대는 주차 가능하다. 대중교통으로 성벽 접근은 포기해야 한다.

둔덕기성은 입구부터 성벽이 잘 복원돼 옛 자취를 더듬기에 안성맞춤이다. 둘레는 약 526m이고 최고 높이는 4.85m에 이른다. 성안으로 발길을 옮기면 둘레길이 나온다. 입구 왼쪽 성의 서남쪽 하단부에는 둥근 집수정이 보인다. 직경 16.2m, 깊이 3.7m에 달해 물 16만6천ℓ를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집수시설이라고 한다. 원형의 단면 계단식으로 북쪽은 4단, 동·서·남쪽은 3단으로 축을 쌓았다.

용도는 장기항전에 대비해 빗물을 받아 사용한 듯하다. 이 물은 이곳에 거주했던 고려 의종과 시종들, 주둔 군사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상당히 많은 수량을 유지하고 있다. 집수정 발굴조사 결과 청자접시 기와 명문이 있는 청동그릇 조각 화살촉 구유 멍에 괭이 목재 망치 쇠뼈 등이 나왔다고 한다. 축조시기와 당시 생활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라시대 현 거제 일대의 치소(治所)로도 추정된다. 집수정 옆에는 집터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때까지 건물이 실존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서북쪽 성벽을 따라 정상부까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높은 곳에 전망대가 나온다. 바로 옆 사각철제 울타리 안에 지름 10~20cm 가량 일정한 크기 둥근 돌무더기가 눈에 띈다.

둔덕기성 유적지 발굴 조사 때 표층을 걷어 내자마자 대량 발견됐다는 석환군이다. 이 정도 크기의 돌은 전시에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돌팔매질하기에는 조금 크다. 무슨 무기를 이용해 적에게 던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석전 무기로 쓰인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바로 옆에는 창고 집터도 있다. 남문지, 서문지는 전망대에서 좌우로 갈라진다. 둔덕기성에서 눈여겨 볼 곳은 동문지다. 바깥에서 바라볼 때 요철(凹)모양 현문식의 특이한 구조기 때문이다. 성벽의 바깥은 낭떠러지다. 그러고 보면 적의 주 공격로로 짐작된다. 별다른 통로가 없다. 성문을 잠그면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한다. 현재 복원된 성벽 위는 사람이 드나들면 붕괴가 우려돼 출입금지 푯말이 세워져 있다. 복원 안 된 성벽 구간은 허물어진 그대로 남아 있다. 성의 형상이나 당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외벽은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다. 적이 쉽게 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한 쌓기 기법이다. 성의 북쪽에는 기우제와 산신제 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둔덕기성은 조사결과 7세기 삼국시대 처음 쌓았다. 고려 때 수축돼 축성법 변화 연구에 학술적 가치가 크다. 1999년 동아대박물관 지표조사, 2004년 2009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시굴 및 발굴조사, 2009년 10월, 학술세미나 등이 있었다. 이를 통해 7세기 신라시대 처음 쌓은 성이며 성 쌓는 방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밝혀졌다.

둔덕기성은 일제강점기까지 ‘폐왕성’으로 불렸다. 때는 1170년 고려 의종 24년 8월 뿌리 깊은 문신 우대정책과 무신 차별로 상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휘하장수들이 보현원에서 무신정변을 일으켰다. 이 때 의종은 3년간 거제도의 둔덕기성 유폐가 결정됐다. 그 뒤 1173년에 김보당 등 의종 복위 세력이 무신 정권에 항거해 거병했다. 이들 군사는 유배된 의종을 모셔와 받들고 동경(현 경주)로 가서 웅거했다. 그러나 무신정권이 보낸 군사들에 의해 복위 세력은 와해됐다. 의종의 나이 향년 47세나던 해 이었다. 의종은 믿고 지내던 천민출신 장수 이의민에 의해 동경 곤원사 연못가에서 술을 두어 잔 마신 뒤 등뼈가 꺾여 지는 비참한 죽임을 당했다. 왕의 시신은 큰솥 안에 안치돼 못 안에 수장 당했다고 전해진다. 이 소식을 들은 둔덕기성 신하와 백성들은 섣달 그믐날 의종을 추모하는 추모제를 올렸다. 추모제는 1900년대까지 이어지다 일제강점기 중단됐다. 그러나 거제수목문화클럽이 지난 2008년 10월 다시 불붙여 이어지고 있다. 둔덕기성은 의종 뿐만이 아니라 조선 초 역성혁명으로 왕씨 성 고려 왕족들이 유배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만으로 둔덕기성은 1934년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통영군지’에 ‘폐왕성’으로 기록됐던 것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2010년 8월 24일 사적 509호로 지정하면서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붙인 흉한 이름을 없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32권 거제현 고적조(古跡條) 등의 기록을 찾아 ‘둔덕기성’이라는 명칭을 되찾았다.

둔덕기성은 7세기 통일신라 산성 축조수법을 알려주는 소중한 유적이다. 게다가 현문식 구조인 동문지와 고려 시대 보수된 흔적이 남아 고려시대 축성법도 보여주고 있다.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다 보면 주변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봉산 자락이 보이는 동남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확 트여 있다. 남쪽 성벽위에선 청마 유치환 시인이 어린 시절을 보낸 빙하마을과 청마기념관이 보인다. 서북으로는 고려 의종이 건너왔다는 견내량과 고성과 통영 앞바다가 한 눈에 펼쳐진다. 고령 의종의 통한과 삼국시대 이후 외침에 대비해온 둔덕기성이 복원사업이후 쉬이 가볼 수 있는 유적지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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