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던 지방자치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여야가 법안처리를 차일피일 미루고,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5월 임기가 만료되는 20대 국회와 함께 법안이 자동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4월 총선을 감안할 때 법안을 처리할 마지막 기회는 이번 정기국회뿐이다.

현재 자치분권 관련 법령 7개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중 ‘지방이양일괄법’은 이미 관련 국회 상임위 검토가 끝났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상임위 검토에서 571개 사무 전체가 아닌 70% 정도만 수용됐지만, 그마저도 지역 입장에서는 절실하다. 지난해 처리를 기대했지만 결국 지금까지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30여 년 만에 개정이 추진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확대하고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는 9개월째 손을 놓다 지난 14일 법안소위에 상정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올해 내 5개 지역에서 시범실시 하고자 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해진 자치경찰제도 관련 법안도 통과돼야 하며, 지방소비세율을 인상하는 법안 등 자치분권의 핵심인 재정분권 관련 법안들도 처리가 시급하고 중요한 법안들이다.

자치분권 관련 법안이 국회에 머물러 있는 동안 지역은 소멸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저출산고령화포럼에서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전국 228개 지역 중 97개 지역이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연구에서보다 8개 지역이나 늘어난 수치다. 이 연구위원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되면 소멸위험에 처한 지역이 100개가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소멸위험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데, 시도 단위로 보면 전남이 가장 높고, 경북, 전북, 강원 순이다. 2017년 지역별 지역 소득 현황을 보면 전체 지역소득의 50.3%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지역간 불균형이 심각함을 반증한다.

1991년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30년의 역사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제대로 된 자치와 분권은 정착되지 않고 있다. 자치분권은 단순하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주체인 주민, 지방정부, 지방의회 등 지역의 권한과 자율성을 키워 지역 문제를 지역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해 지역의 전략적 발전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20대 국회가 이제 불과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동안 자치분권 관련 법안만큼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지역의 입장에서는 생존 문제이고 민생과 삶의 질의 문제이다. 국가적으로는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일이며, 민주주의를 위한 일이다. 이제는 ‘주민이 진정한 지역의 주인이 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자치분권 관련 법안 통과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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